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보다 예쁜 여자 Mar 11. 2024

마음으로 갚은 빚

대가 없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


우리 엄마는 간암말기 폐전이 판정받은 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 잘 쓰는 브런치 작가인 무무작가가 얼마 전 쓴 글에 ‘남의 불행 위, 나의 행복,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글이 있다.



독일어인 샤덴프로이데는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한다. 놀랍게도 강한 질투를 느끼는 이들에게는 남의 불행이 닥쳤을 때 그들의 뇌는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과연 엄마의 말기암 소식을 전해 듣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우리가 가지는 이중적 감정, 남의 불행에서 가져오는 위안과 위로는 부정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엄마는 코로나 덕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로 모든 모임이 다 취소되어 불참 이유를 통보하지 않아도 되었고, 동네도 서로 왕래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때였기도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가 조경업을 하던 곳은 양주시 외곽이었다. 원래 하던 고양시에 은평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양주시 외곽 쪽 농장으로 옮겨갔다. 두 마을엔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벌며 원예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인정 많은 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참 많이 베풀었다. 하지만, 항상 봐 온 것은 엄마의 푸념이었다. 꼭 끝이 안 좋았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끝맺음되지는 않는다.



나는 엄마에게 베풀지를 말거나, 속상해하지를 말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늘 쏘아붙이곤 했다. 그런데, 사실 실행에 못 옮기고 있던 나 자신을 향한 따끔한 질책이기도 했다.





대가 없는 선행,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한다.


그런데, 과연 대가가 없을까? 우리가 베풀 때 갖는 기쁨이나 만족은 우선 자신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위한 선행이기도 하다.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을까? 내가 베풀었을 때, 최소한 상대방의 ‘감사하는 마음‘ 이라는 대가를 바라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마음으로 주는 선행은 마음으로 보답받기를 대부분 바라게 된다.



공예를 시작하며 그동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 주위의 가까운 지인들이나 친구들에게 선물을 많이 했다. 마음을 전하는 특별한 선물이기에 며칠을 걸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들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





엄마는 돈이 급한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주고 하늘나라에 가실 때까지 못 받은 돈이 수천만 원이다.  아마도 지금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엄마는 영양제를 팔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거절 못했다. 엄마 유품을 정리하는데 아직 뜯지도 않은 고가의 영양제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런데, 전부 특히 간에 좋다는 고농축액 영양제들뿐이었다.



그런 고농축 영양제를 오랫동안 무리하게 섭취해 간의 부담이 너무 커진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무엇이든지 우리에겐 적당한 게 좋다. 과하면 꼭 탈이 난다.



엄마가 간암 말기 판정받고 응급실에 간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바로 상황버섯을 아주 진하게 달여 며칠을 마신 후이다. 주치의가 깜짝 놀라며 간질환 환자에게 민간요법에 의한 고농축식품은 치명적이라 하며, 금지해야 할 식품을 나열한 프린트물을 주었다.



자료 출처: 은평성모병원



민간요법은 절대 금하며, 검증받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이나 각종 달인 물, 진액류, 즙류 등은 자칫 독성 간염을 유발해 간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 경우 환자의 예후에 치명적이므로 절대 섭취하지 않도록 한다.



혹시라도 간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어떻게 섭취해야 할지, 꼭 확인하기 바란다. 먹는 사람에 따라 좋은 음식이 될 수도, 나쁜 음식이 될 수도 있다. 내게도 식단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잘 정리해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보며 확인했었다.



여장부 엄마를 간병하기 시작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평소 자기주장이 너무나도 강한 엄마를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나의 철칙은 ‘몸에 좋은 거 하나 더 먹기보다, 해로운 거 하나 더 빼기’ 였으나, 엄마는 처음엔 따라 주지 않았다. 그런 나의 수고를 덜어 준 사람이 있다. 동네 사람 중 유일하게 엄마가 엄마의 암을 알린 사람이다.





사업을 크게 하다 망해 그곳으로 와서 비닐하우스에서 원예업을 하던 분의 부인이었는데 엄마와 연배가 비슷해 가까이 지냈고, 엄마가 빌려 준 돈을 갚지 못해 아들이 가끔 와서 노동으로 갚아 나가던 분이다.


그분의 아들은 암을 수술하고 이겨낸 사람으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많이 공유해 주었는데, 사람이 직접 겪은 체험 이상 정확한 정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들의 말이 아직도 안 잊힌다.


“ 내 친구 중에 암 걸린 애들 중, 잘 사는 애들은 이미 다 죽었어요. 돈이 많으니 몸에 좋다는 온갖 좋은 것 다 먹었거든요. 고농축영양식품은 오히려 환자에게 독이 되거든요 “


입맛이 전혀 없는 암환자가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건 밥을 푹 끓인 밥물이라고 알려 준 사람도 그분들인데, 엄마는 정말 유일하게 그것만 드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자가 꼭 같이 트럭을 타고 와 입맛이 전혀 없는 엄마를 위해 만든 여러가지 음식을 주고 가곤 했는데, 사실 그분들에겐 그 음식재료비도 부담이 되는 처지였다.



엄마는 그게 안쓰러워 그분들에게 음식 재료비 좀 주면 안 되겠냐 했으나 난 매정하게 “빌린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잘라 말했었다.



하루는 돈 쓸 일이 없는 엄마 지갑이 텅 비어 물었더니, 모기만 한 소리로 그분들에게 나 몰래 다 주었다고 했다. 난 그때, 왜  또 엄마에게 그렇게 신경질을 냈는지 모른다.



사실 나 자신조차 늘 되풀이하는 똑같은 상황을 엄마에게 분풀이했는지 모른다.





그 모자는 누워 있는 엄마 손을 꼬옥 잡아 주며 말벗이 되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해 주며 마지막까지 용기를 주고 가곤 했다.



못 갚은 돈의 빚을 마음으로 되돌려 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이 다른 사람들의 빚까지 전부 엄마에게 마음으로 갚아주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엄마를 간병하면서 가장 감사한 분들이 엄마의 말벗이 되어 준 사람들이다. 나의 큰 짐을 덜어 주었다. 그중 요양보호사가 있다. 다음엔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예쁜 봄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 예쁜 목련꽃 만발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기를 바라며 만든 작품이 있다. 그 목련꽃과 함께 봄맞이 나들이를 했다.









이전 07화 죽음까지 배웅해 주는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