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파크와 센트럴파크가 기억하는 두 여인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도시의 한가운데서도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높은 빌딩과 분주한 거리 사이에서 두 공원은 사람의 걸음을 늦춘다.
봄이 오면 하이드파크는 노란 수선화로 채워지고, 센트럴파크의 호숫가는 연분홍 벚꽃으로 물든다. 꽃길을 걷다 보면, 이곳이 세계적인 대도시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이 공원들에는 꽃보다 더한 향기로 사람을 머물게 하는 두 여인이 있다. 다이애나와 재클린.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 이해인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중에서
꽃처럼 살다 한 세상을 마무리한 두 여인을 기리기 위해, 런던의 하이드파크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 기념 분수 (Diana, Princess of Wales Memorial Fountain)가 있고, 뉴욕의 센트럴파크에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Jacqueline Kennedy Onassis Reservoir)가 있다.
런던, 물결처럼 흐르는 기억
런던의 중심에 자리한 하이드파크는 약 142헥타르 규모의 넓은 공원이다. 1536년 헨리 8세의 사냥터로 시작해, 1637년 찰스 1세가 시민에게 개방하면서 오늘의 쉼터가 되었다.
서펜타인(Serpentine) 호수는 1730년대, 조지 2세의 왕비 캐롤라인의 요청으로 왕실 조경가 찰스 브리지먼(Charles Bridgeman)이 조성한 인공호수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곡선과 완만한 물가 덕분에 인공이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물새들은 사람 가까이까지 천천히 걸어 나왔다가 다시 물 위로 미끄러져 간다. 그 느린 움직임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호수 옆 공원 안쪽에 물이 흐르는 낮은 원형 구조물이 보인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기념 분수다.
200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공식 개장된 이 분수는 미국 조경 디자이너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의 작품이다. 가장 높은 지점에서 시작된 물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잔잔하게 흐르고, 다른 한쪽은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떨어진다. 그 물길은 평온과 격동이 동시에 존재했던 그녀의 삶을 닮아 있다.
다이애나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1961~ 1997)는 동화 속 공주처럼 세상에 등장했다. 1981년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열린 결혼식은 전 세계 수억 명이 지켜본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웨딩드레스의 긴 트레인이 성당 바닥을 스치던 순간, 그 화려함 뒤에 외로움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를 낳았지만, 결혼 생활은 균열을 피하지 못했다. 우울증과 거식증을 겪으며 깊은 시간을 지나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바꾸었다. 에이즈 환자의 손을 잡았고, 지뢰 제거 운동에 앞장섰다. 장벽을 허무는 그 접촉은 ‘국민의 왕세자비’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1997년 파리에서의 교통사고는 전 세계를 침묵하게 했다. 서른여섯 해의 짧은 생이었다.
분수는 높이 솟구치지 않는다. 대신 낮게, 누구에게나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열려 있다. 얕은 물길을 따라 아이들이 뛰어들고, 사람들은 가장자리에 앉아 발을 담근다. 그 흐름은, 어쩌면 그녀의 삶과 닮아 있다.
뉴욕, 호수 위에 남은 고요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뉴욕 한가운데, 센트럴파크는 남북 약 4km, 동서 약 800m에 이르는 녹지를 품고 있다. 1858년, 조경건축가 프레데릭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칼버트 보(Calvert Vaux)의 설계로 시작된 이 공원은 ‘도심에서 자연으로 가장 빠르게 벗어나는 공간’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약 843 에이커에 이르는 공원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가장 가까이 마주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 중심을 따라 걸어가면, 넓고 고요한 인공 호수가 펼쳐진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다.
원래 뉴욕의 주요 수원지였던 이 저수지는 1994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저수지를 따라 이어진 1.58마일의 트랙에는 달리는 사람들과 잠시 멈춰 호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1929~1994) 역시 봄이면 벚꽃이 호수를 따라 늘어선 이 길을 즐겨 달리던 사람이었다.
1953년,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와의 결혼은 ‘미국판 로열 웨딩’이라 불릴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디자이너 앤 로(Ann Lowe)가 제작한 클래식한 웨딩드레스, 필박스 모자와 간결한 슈트는 1960년대 미국의 품격을 상징했다. 절제된 미소와 단정한 스타일은 퍼스트레이디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1963년, 달라스에서 울린 총성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붉게 물든 핑크색 슈트는 침묵과 절제의 상징으로 남았다.
상실 이후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1968년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재혼했지만, 1975년 그의 죽음으로 다시 이별을 맞았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 출판 편집자로 일하며 조용히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1994년, 림프종으로 생을 마감했다. 예순네 해의 삶이었다.
저수지는 분수처럼 흐르지 않는다. 대신 넓게 머문다. 물 위에는 하늘이 비치고, 도시의 그림자가 스며든다. 그 고요함이, 어쩌면 그녀의 삶과 닮아 있다.
두 도시, 두 향기
다이애나와 재클린은 모두 세기의 결혼식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고, 깊은 상실을 겪었다.
꽃은 계절이 지나면 지지만, 두 여인의 향기는 오래 남는다. 하이드파크의 분수에서, 센트럴파크의 호수에서 그 향기는 여전히 머문다. 다이애나는 분수의 물결 속에서, 재클린은 호수의 수면 위에서 꽃처럼 말을 건넨다.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한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이해인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중에서
강을 건너 도시를 걸었습니다. 결국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람의 향기였습니다. 도시는 변해도 그 향기는 오래 남습니다.
<강을 건너, 도시를 걷다> 연재는 여기서 마칩니다. 이 길을 함께 걸어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