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노란 트램을 따라

아이언 브리지에서 과학산업박물관까지

by 꽃보다 예쁜 여자




맨체스터의 도로 한가운데로 노란색 메트로링크 트램이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덕분에 이 도시는 첫 순간부터 낯설지 않다.





중앙 광장에 서자 부드러운 곡면의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전시장과 콘퍼런스 홀로 쓰이는 맨체스터 센트럴(Manchester Central). 그러나 이곳은 한때 증기기관차가 숨을 고르던 철도 종착역이었다. 철길은 더 이상 검은 연기를 품지 않지만, 전선을 따라 여전히 도시를 움직인다.



맨체스터는 리버풀과 50km 남짓 떨어진 도시. 우: 맨체스터 센트럴



1992년에 개통된 경전철 메트로링크(Metrolink)는 도심에서는 트램처럼 도로 위를 달리고, 외곽으로 나가면 과거 철도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산업혁명 시기에 산업의 속도를 만들던 선로는, 이제 사람들의 일상을 실어 나른다. 시계 아래를 오르내리던 발걸음의 목적은 달라졌지만, 이곳에 스며든 시간만큼은 겹겹이 남아 있다.



산업혁명이 만든 도시


맨체스터는 축구로 알려진 도시지만, 오늘을 이해하려면 산업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중세까지 이곳은 주변 농촌에서 생산된 양모와 면화를 거래하던 작은 시장 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면직물 산업의 기계화가 본격화되면서 맨체스터는 영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공업 도시로 변모했다.



좌: Manchester Central Library, 우: Manchester Town Hall Extension



철로 건너간 풍경, 아이언 브리지


산업혁명은 공장 안의 변화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풍경과 공간, 인간이 자연을 건너는 방식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준 장면이 바로 영국 슈롭셔(Shropshire) 주, 세번 강(River Severn) 계곡에 세워진 아이언 브리지(Iron Bridge)였다.


시골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세번 강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철제 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강 위에 우뚝 선 아이언 브리지는 말 그대로 철로 세워진 역사다.



세번 강(River Severn) 계곡에 세워진 아이언 브리지(Iron Bridge)



1779년에 세워진 이 다리는 세계 최초의 철제 교량이었다. 이전까지 다리는 대부분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졌고, 철은 구조 재료로 쓰기에는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주조 철로 완성된 아이언 브리지는 철이 구조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 한 번의 시도는 이후 철도와 공장, 대형 건축물의 구조 방식으로 이어지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멈춘 이름들


다리 옆에는 작은 기념비가 서 있다. 동판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이 한 줄씩 새겨져 있다. 강을 건너는 기술이 처음으로 증명된 자리에서, 삶은 그렇게 멈춰 있다. 아이언 브리지는 산업혁명의 상징이자, 전쟁과 상실을 통과한 생활 공동체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기계를 조직한 사람, 리처드 아크라이트


아이언브리지 협곡(Ironbridge Gorge)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더비셔(Derbyshire)의 크롬퍼드(Cromford) 계곡에 닿는다. 그곳에 자리한 매슨 밀(Masson Mills)의 건물 외벽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Sir Richard Arkwright & Co.
– Established 1769


이 짧은 문장은 산업혁명의 시작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 1732–1792)는 수력을 이용해 방적 공정을 조직했다. 그의 혁신은 기계 그 자체보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리듬으로 일하는지를 바꿔놓았다는 데 있었다.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아크라이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이발사이자 가발 제작자로 일했다. 손으로 일하는 감각에는 익숙했던 그는, 실을 손으로 잣는 느린 속도가 전체 생산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보았다. 여러 기술자들과 협력해 물의 힘으로 방적을 자동화한 워터 프레임(Water Frame)을 완성했다.



나는 실험을 할 만큼 부유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배울 수밖에 없었다.
-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




더 중요한 변화는 노동의 장소였다. 집에서 실을 잣던 일은 공장으로 옮겨졌고, 하루의 리듬은 자연이 아니라 기계가 정했다. 1771년 크롬퍼드에 세운 공장은 현대적 공장 시스템의 원형이 되었고, 1783년에 완공된 매슨 밀은 생산 시설을 넘어 노동자 주거와 규율을 포함한 산업 공동체였다.


안정적인 임금은 보장되는 대신, 엄격한 규칙과 통제가 따랐다. 이 두 조건은 이후 산업 사회가 반복해서 마주하게 될 삶의 구조였다.


방적기와 직조기의 도입으로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가내 수공업은 공장 중심의 대량 생산 체계로 대체되었다. 강과 운하, 철도는 면화와 석탄을 실어 나르는 동맥이었고, 공장은 그 흐름을 따라 자라났다.



슈롭셔(Shropshire) 주, 세번 강(River Severn)



증기, 공장, 철도


우리는 흔히 증기기관을 떠올리면 증기기관차를 먼저 생각하지만, 초기 증기기관은 광산의 물을 퍼내는 느린 펌프에 불과했다. 이를 바꾼 인물이 제임스 와트(James Watt)였다. 그는 분리 응축기로 효율을 높여 증기를 공장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동력으로 만들었다.


증기를 움직이는 힘으로 전환한 이는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이었다. 그는 고압 증기로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차를 철로 위에서 운행하며, 증기가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가능성을 철도라는 시스템으로 완성한 인물이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이다. 그의 기관차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를 달리며 도시와 도시를 연결했다. 세 사람은 모두 영국인이었다.


이때 맨체스터에서는 증기와 공장, 철도가 처음으로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움직였다. 약 50km 떨어진 리버풀 항구​로 들어온 면화는 맨체스터의 공장에서 직물로 가공되고, 철도를 따라 다시 세계로 나갔다.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



다시, 맨체스터


이 모든 흐름을 보러 맨체스터 캐슬필드(Manchester Castlefield) 일대로 향했다. 한때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의 종착역이었고, 공장과 창고가 밀집해 있던 이곳은 오늘날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으로 남아 있다. 산업혁명이 실제로 작동했던 자리 위에 세워진 공간이다.



증기 동력 직조기, 카딩 엔진(Card­ing Engine), 동력 직조기(Power Loom)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아크라이트의 워터 프레임이 놓여 있고, 그 뒤로 뮬 방적기(Spinning Mule)와 증기 동력 직조기(Steam-powered Power Loom)가 방적과 직조의 흐름을 따라 이어진다. 1820년대부터 맨체스터의 노동자들은 증기로 직물을 생산했고, 공장 안에서 만들어진 실과 천은 포장되어 곧 세계로 이어졌다.



조지프 휘트워스의 평삭기, 휘트워스 정밀 공작기계, 조지 베드슨의 연속 압연기



철의 기술도 달라졌다. 조지 베드슨의 연속 압연은 철선을 끊김 없이 생산하게 했고, 조셉 휘트워스의 표준화된 나사 규격은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자동화된 기계는 인간의 손동작을 모방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마거릿 화이트 피셴든은 석탄 연소와 대기 오염을 분석하며 기술의 진보가 도시의 공기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세기 중반까지, 면화는 미시시피강과 리버풀 항을 거쳐 맨체스터의 공장으로 들어왔다. 영국 면직물의 대부분이 미국 남부의 노예 노동으로 재배된 면화를 원료로 했다는 사실은, 이 도시의 번영이 대서양 너머의 착취 위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증기 동력 직조기, 아크라이트의 워터 프레임(Arkwright’s Water Frame), 뮬 방적기(Spinning Mule)



그 실을 심고 따던 노예들은 임금을 받지 못했고, 자유도 없었으며, 가혹한 폭력 속에 놓여 있었다. 전시장 한쪽에는 노예제 폐지 운동가 사라 파커 레먼드(Sarah Parker Remond)가 맨체스터에서 연설하던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맨체스터 면직 공장의 부는,
단 한 푼도 노예들의 손에 닿지 않았다.



사라 파커 레먼드는 1859년 맨체스터에서 연설하며, 미국 남부의 노예 노동과 이 도시의 면직 산업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폭로했다.



맨체스터의 공장 안에서도 노동은 가혹했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이 일상이었고, 어린이들은 기계 아래에서 끊어진 실을 잇거나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공장은 시간을 통제했고, 노동자는 그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이 박물관은 성과만을 전시하지 않는다.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세기 초 산업화로 수천 명이 새 공장과 작업장으로 몰려들며 인구는 급증했고, 과밀과 질병이 확산되었다. 특히 식수 부족은 치명적이었다. 이에 운동가와 기술자들이 나서 상수도와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며, 도시는 비로소 근대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맨체스터의 제작자들은 자동차로 눈을 돌렸다. 롤스로이스에서 대중차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동 수단을 실험하며 편리함과 연결성은 커졌지만, 교통사고와 대기 오염이라는 문제도 함께 남았다.



1904년 제작된 롤스로이스 10마력 자동차, 증기와 벨트로 움직이던 산업의 동력이 도로로 이동하던 순간을 보여준다.



전시장을 나와 산업혁명의 흔적이 남은 맨체스터 거리를 다시 걸었다. 이 도시에서 산업혁명은 무엇이었을까.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기술은 인간을 해방시키는가,
아니면 새로운 규율 속에 묶는가.



Manchester Art Gallery, The Midland Hotel, Manchester



내 앞을 지나가는 노란 트램은
낭만만을 싣고 달리지는 않았다.







<강을 건너, 도시를 걷다> 7화가 블라인드 처리된 뒤 삭제되어, 대신 새로운 글을 한 편 다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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