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가 시작된 도시, 에든버러

빅토리아 스트리트에서 다이애건 앨리를 걷다

by 꽃보다 예쁜 여자




에든버러라는 도시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는 어디에 서 있든 고개를 들면 보이는 바위 위의 성이 있다. 캐슬 록이라 불리는 오래된 사화산의 바위 위에 얹힌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이다.






이 도시는 자연스럽게 이 성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가 나뉜다. 해발 약 130미터의 캐슬 록(Castle Rock)에서 내려다보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이 높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아래로 차곡차곡 쌓여 내려간다. 성 아래로는 구시가지가 흘러가듯 이어지고, 맞은편에는 신시가지가 질서 정연한 격자로 도시를 받치고 있다.


에든버러를 걷다 보면 이 도시는 상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이야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기보다, 이미 시작된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해리포터와 에든버러


에든버러 성이 내려다보는 도시의 실루엣과 중세적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가 호수를 건너 처음 호그와트를 바라보던 순간이다. 호그와트는 J. K. 롤링이 만들어낸 가상의 마법학교지만, 물 위에서 올려다본 그 성은 학교라기보다 요새에 가깝다. 지켜줄 것 같으면서도,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풍경이다.






해리포터의 집필 초기, 롤링은 에든버러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해리포터는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이미 있던 세계를 불러낸 것처럼 느껴진다. 에든버러 성 앞에 서면 그 감각이 그대로 겹쳐진다. 가까워질수록 따뜻함보다는 단단함이 먼저 전해진다. 바위 위에 얹힌 성은 품어주기보다는, 이 선을 넘을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는 울타리처럼 다가온다.

도시 위에 우뚝 서 있지만, 아래의 일상과 끊어지지 않은 성.

에딘버러 성은 호그와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라기보다,

왜 그런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는지 알게 해주는 풍경이다.






위에서 아래로, 이야기 속으로


에든버러에서 위와 아래는 단순한 높이 차이가 아니다. 왕과 군대는 성에 머물렀고, 사람들은 내려와 길을 만들었다. 성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로열 마일에 닿는다.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 이어지는 이 길 위로 백파이프 소리가 돌바닥을 타고 흐르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출판사가 있던 건물, 글을 쓰던 카페, 신문사가 자리했던 골목들이 일상의 동선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작가들이 이 도시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생각할 거리와 다음 문장은 늘 길 위에 남아 있다. 한 블록을 걷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 듯하다.


그러다 문득, 길은 갑자기 좁아지고 낮아진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소리는 벽에 막혀 가라앉는다. 익숙하던 거리의 규칙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옮겨지는 순간처럼. 빅토리아 스트리트는 그렇게 나타난다.






빅토리아 스트리트, 내려와야만 보이는 세계


빅토리아 스트리트((Victoria Street)는 에든버러 구시가지에 자리한 곡선형 거리다. 위쪽의 조지 4세 브리지(George IV Bridge)에서 시작해, 아래쪽 그래스마켓(Grassmarket)으로 이어진다.


19세기 중반에 조성된 이 거리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도시 재개발의 결과였다. 직선이 아니라 굽어 있고, 한눈에 끝이 보이지 않으며, 상점들은 위아래로 겹쳐 있다.





이 길에 서면 하나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해리가 처음 다이애건 앨리로 들어가던 방식이다. 다이애건 앨리는 학교로 가기 전 준비를 하고, 지팡이를 사고 교과서를 고르는 곳이다. 마법사들의 일상이 이어지는, 해리포터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거리다.


하지만 이 거리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이 있느냐보다, 어떻게 들어가느냐에 있다. 평범한 런던의 벽을 통과하는 순간 세계의 규칙이 바뀐다. 해리는 새로운 장소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다른 질서 안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벽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거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단지 통과했을 뿐이다.





Harry had never believed
he would find himself here.
해리는 자신이 평생 꿈꿔온 세계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가 놀란 이유는 상상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들어선 세계가 너무도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질서였다.






빅토리아 스트리트도 그렇다. 위에서 내려다봐서는 끝이 보이지 않고, 내려가야 하고, 돌아서야 하며, 시야는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이 거리는 상상으로 꾸며진 공간이 아니다. 이미 닳아 있는 계단과 오래된 벽, 수백 년 동안 같은 방향으로 흘러온 골목이다. 발밑에서는 돌바닥의 거친 촉감이 전해지고, 고개를 들면 살짝 기울어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공기 속에는 오래된 책과 가죽 냄새가 섞여 있다.






거리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가게가 보인다. 빅토리아 스트리트의 오래된 건물 안에 자리한 Museum Context다. 겉으로는 작은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창 너머로는 해리포터와 관련된 소품과 이야기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가게 외벽에는 파란 표지판 하나가 붙어 있다. 1873년에 설립된 로버트 크레서의 브러시 숍이 이곳 40번지에 131년 동안 자리해 왔다는 설명이다. 해리포터 팬들은 이 마법 같은 거리가 J. K. 롤링에게 다이애건 앨리의 영감을 주었고, 먼지 쌓인 상자들과 빗자루로 가득한 빅토리아 시대의 진열대를 간직한 이 작은 가게가 혹시 올리밴더의 지팡이 가게에 영감을 준 것은 아닐지 믿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실 여부보다, 그런 상상이 이 거리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 더 오래 남는다.





이 길 어딘가에 작가가 글을 쓰던 카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실제 장소는 바로 옆 거리였다. 롤링이 글을 쓴 카페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써 내려간 곳은 니콜슨 스트리트의 작은 카페였고, 조지 4세 브리지 근처의 엘리펀트 하우스(The Elephant House) 에서는 출간을 앞두고 문장들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빅토리아 스트리트에 있는 엘리펀트 하우스는 그때의 집필 장소와는 다른, 이후에 생긴 지점이다. 하지만 이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붉은 간판 앞에 서 있으면 그 구분조차 크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빅토리아 스트리트는 해리포터를 가장 강하게 떠올리게 만든다. 다이애건 앨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거리를 걷는다. 그 세계에 들어가는 방식을 다시 밟기 위해서.





벽을 통과한다는 것


걷는 길 위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책을 펼친다. 글은 횃불처럼 환하지도 않다. 다만 세상을 조금 더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앞에 희미한 빛 하나를 놓아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2026년이라는 벽 앞에 서 있다. 단단해 보이지만, 그 벽은 넘는 것이 아니라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것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작은 빛을 따라 각자의 속도로, 우리는 오늘도 그 벽을 통과하기 위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The barrier seemed solid,
but he walked straight through it.
벽은 단단해 보였지만, 그는 그대로 걸어 통과했다.
-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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