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시간이 만든 해리 포터 뉴욕 스토어
5번가에서 시작된 하루
맨해튼 미드타운의 5번가는 뉴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리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 북쪽에서 할렘까지, 약 10km에 이르는 길이 고층 빌딩 사이로 곧게 이어진다. 몇 블록만 걸어도 거리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센트럴파크와 주거 지역이 이어지고, 중간에는 MoMA와 록펠러 센터 같은 문화 공간이 자리한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유니온 스퀘어 주변의 상점과 일상적인 풍경이 나타난다. 5번가는 걷는 것만으로도 뉴욕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거리다.
매디슨 스퀘어 파크, 잠시 속도가 느려지는 곳
5번가와 브로드웨이, 23가가 만나는 지점에는 6 에이커 남짓한 녹색 쉼터, 매디슨 스퀘어 파크(Madison Square Park)가 있다. 크지는 않지만 이 공원은 뉴욕의 빠른 일상과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장소다.
공원 한쪽에는 쉐이크쉑(Shake Shack)의 첫 매장이 있다. 2004년, 레스토랑 경영자 대니 마이어(Danny Meyer)가 이곳에 작은 핫도그 카트를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버거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본점은 여전히 이 공원 안, 나무 그늘 아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버거와 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아 잠시 속도를 늦춘다.
공원 맞은편에는 이터리(Eataly)가 자리한다. 이탈리아 식재료와 레스토랑, 마켓이 결합된 공간으로,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공원의 쉼과 뉴욕의 빠른 식문화가 맞닿는 풍경이다.
플랫아이언, 도시가 위로 자라기 시작한 자리
이 일대에는 출판, 미디어, 테크 기업과 레스토랑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누군가에겐 출근길이고, 누군가에겐 산책 코스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여행의 목적지다. 뉴욕의 일상이 가장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구간이다.
공원에서 대각선 맞은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삼각형 형태의 플랫아이언 빌딩(Flatiron Building)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02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맨해튼 고층화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지금도 수많은 영화와 사진 속에서 뉴욕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등장한다.
해리 포터 뉴욕 스토어, 이야기가 머무는 자리
플랫아이언 디스트릭트를 한 블록 더 걸으면 해리 포터 뉴욕 스토어(Harry Potter New York)가 나타난다. 외곽의 테마파크처럼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하는 장소는 아니다. 출근길과 산책길, 점심과 약속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도심의 공간이다.
2021년 6월 문을 연 이 매장은 약 21,000 ft²(약 1,950㎡) 규모의 미국 내 유일한 해리 포터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다. 단순한 굿즈 숍이라기보다, 문학적 세계관을 공간 경험으로 옮긴 문화 시설에 가깝다. 매장 곳곳에서는 계산대 앞보다 사진을 찍는 방문객의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매장은 세 개 층으로 나뉘어 있고, 동선은 이야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 소년의 이야기, 한 세계의 시작
해리 포터는 평범한 고아 소년이 열한 살 생일에 자신이 마법사임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는 호그와트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와 맞서 싸우며 성장한다. 일곱 권에 걸친 시리즈는 성장과 우정, 희생, 사랑을 중심에 두고 전개된다.
저자 J.K. 롤링(Joanne Kathleen Rowling, 1965~)은 인터뷰에서 해리 포터를 “영국 사회를 비틀어 본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영국의 교육 제도와 정치, 언론, 권력 구조를 겹쳐 놓으며, 이 시리즈를 단순한 아동 문학을 넘어서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J.K. 롤링은 잉글랜드 남서부 글로스터셔의 예이트에서 태어났다. 엑서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와 고전학을 전공한 뒤 포르투갈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이 시기 결혼과 출산, 이혼을 겪었고, 어린 딸과 함께 영국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정규직 일자리는 없었고, 정부 지원에 의지해 생활을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려 유모차 옆에서 원고를 펼쳤고, 난방이 되는 카페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작업 공간이었다. 초고의 대부분은 에든버러의 작은 카페에서 1995년 무렵 완성됐다.
해리 포터의 출발점은 1990년,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기차 안이었다. 마법학교에 다니는 소년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는 이 이야기를 여러 해에 걸쳐 다듬어 갔다. 그러나 완성된 원고는 열두 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분량이 길다는 점, 포화된 판타지 시장, 신인 작가라는 점이 이유였다.
끝내 런던의 작은 출판사 블룸즈버리가 1996년 원고를 받아들였다. 편집자의 여덟 살 딸이 원고를 읽고 “다음 장은 어디 있어요?”라고 묻던 반응이 결정적이었다. 1997년 6월,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초판 500부가 조용히 출간됐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반응은 빠르게 퍼졌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5억 부 이상 판매됐고, 영화와 무대, 전시로 확장되며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서사 중 하나가 되었다. 한 작가가 버텨낸 시간은 세계적인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제 책장과 스크린을 넘어, 뉴욕의 한 거리에서 공간과 체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내의 시간이 남긴 자리
뉴욕 스토어의 지하로 내려가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을 재현한 체험 공간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웃고, 사진을 찍는다. 아이와 어른의 구분은 없다. 모두가 잠시 마법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 듯한 표정이다.
다시 위층으로 올라오면 버터비어 바(Butterbeer Bar)가 이어진다. 호그와트의 겨울과 기숙사 식당, 친구들과의 저녁을 떠올리게 하는 음료다. 바 주변에는 진한 거품의 잔을 손에 든 사람들이 모여 서 있다. 이곳에서 버터비어는 혼자보다는 여럿에게 어울린다.
크리스마스, 호그와트의 겨울이 뉴욕에 닿을 때
올겨울 매장은 ‘Snow Globe(스노 글로브)’를 테마로 꾸며졌다. 전 층에 여덟 개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였고, 스캐빈저 헌트와 약 20분간의 무료 시즌 투어가 운영되고 있다. 트레일 맵을 들고 트리에 숨겨진 단어를 찾으며 공간을 걷다 보니, 어느새 매장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올해 처음 선보인 핫 버터비어와 영국식 민스파이, 시즌 한정 디저트는 분위기를 더한다. 이와 함께 매장은 지역 자선단체와 협력한 양말 기부 드라이브를 운영한다. 방문객이 기부함에 새 양말을 넣으면, 이는 지역 보호소와 지원 기관으로 전달된다. 이야기의 체험이 도시의 실제 필요로 이어진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 남긴 것
출근길과 산책길이 겹치는 5번가의 플랫아이언 디스트릭트, 이곳에서 문은 조용히 열려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별다른 계획 없이 들어와 잠시 머물다 나간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내려간 시간, 반복된 거절을 견뎌낸 시간, 멈추지 않고 버틴 시간이다. 그 인내의 시간들이 지금, 뉴욕의 거리 한복판에 놓여 있다. 롤링의 말이 떠오른다.
Rock bottom became the solid foundation
on which I rebuilt my life.
바닥까지 내려간 그 시간이,
내 삶을 다시 세우는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
- J.k. 롤링, 하버드대 졸업식 초청연설(2008)
문을 나서면 다시 플랫아이언의 거리다. 자동차 소리와 신호등, 바쁜 사람들. 그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버텨낸 시간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이 거리에 남아 있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다.
런던의 작은 출판사에서 세상에 나온 해리 포터의 이야기는 그렇게, 뉴욕의 크리스마스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