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부딪힌 유학생의 짧은 기록.
프랑스 몽펠리에, 밤 1시 02분
작년 한국에서 프랑스 유학을 준비할 때 꿈을 꿨다.
"여기서 언어를 배우고, 경제적 독립도 하고, 길거리 공연도 해보는 등 다양한 도전을 해야지. 시네마 관련 학교에 진학해서 멋진 감독이 되어야겠다. 다시 1학년부터 하는 것도 상관없고, 어학 하는데 2년이 걸려도 상관없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야겠다."
핑크빛 꿈같은 계획들이 힘들더라도 척척 진행될 줄 알았다. 어차피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프랑스어도 안 익힌 상태로 왔기에 이 언어에 익숙해지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대학 입학과 경제적 독립에도 언어적 장벽이 존재했다. 물론 프랑스에서 7개월 정도 더 어학을 하면 대학에 지원을 할 수 있는 B2레벨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과연 그 시간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시간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로 이사를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지난주 일주일 간 파리 내의 집을 찾으러 다녔는데, 예산인 750유로로 구할 수 있는 집이 맨 꼭대기 층의 10m 2짜리 방 한 칸밖에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조차도 외국인에게는 계약기간 등 여러 조건이 붙었다. 2024 파리 올림픽의 여파로 프랑스인들도 매물이 없어 집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보증인이 없는 외국인으로서 [프랑스는 집을 구할 때 프랑스인 보증인이 필요하다.] 약간의 절망이 따라오는 건 당연했다. 파리 내 사립 기숙사는 자리가 없고, 꼴로까시옹[한 집에서 여러 명이 같이 사는 집]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보통 1년 이상 사는 사람들을 구하는 데 나는 사는 기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le bon coin, la carte de paris 앱을 이용해서 집을 구하려고 했지만 괜찮은 매물을 발견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족족 답이 없었다.
사실 1주일 전만 해도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 1년은 있기로 했으니까 파리로 어떻게든 이사 가고, 어학원도 등록하고! 알아서 다 잘 될 거야. 지금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 도전이 너무 짧게 끝나는 거니까'라는 생각에 파리-한국 왕복 티켓을 끊었다. 8월 30일에 한국으로 가서 9월 30일에 파리로 돌아오는 항공 티켓이었다. 그 항공 티켓을 산 그 순간이 7개월 통틀어서 가장 짜릿했던 도파민 폭발의 순간이었다. 혼자 방에서 작게 아니 크게.. 소리 지르고 정말 웃음이 절로 났다. 티켓을 끊은 후, 파리로 집을 보러 가고, 그 이후에 한국에 원래 다니던 대학교의 휴복학 신청 기간이 되어 사이트에 들어갔다. 휴학을 연장하려면 복학 신청을 하고 다시 휴학 신청을 해야 한다길래 일단 복학 신청을 눌렀다. 그리고 2일 뒤에 복학이 정상 결재 처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일 전, '복학 결재 완료'라는 단어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에 9월 30일부터 2월까지 머무는 비용이 상당할 텐데 과연 그 가치를 다 여기서 뽑아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떤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지? 1년 반 남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을 올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대로 부모님한테 의지하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 불확실한 것에 이 정도의 돈을 투자하느니 확실한 것에 투자하는 것이 맞지 않나?
이런 류의 생각이 계속되었고 한국에 있는 모모(가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모는 가나 출생의 사우디 사람으로 한국 대학에 다니고 있는 유학생이다.
"우와 진짜 바보야. 그거 아니야. 당연히 졸업해야지. 이구이구. 일단 졸업하는 게 중요해. 이후에 하고 싶은 거 빨리 다 할 수 있으니까." 서툰 한국말로 전하는 진심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중요한 선택은 하룻밤 자고 내려야 한다는 모모의 말에 하룻밤을 자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그래, 그냥 와라." 그래서 약 한 달 뒤 8월 30일에 한국에 완전히 돌아가서 대학을 먼저 졸업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사실 더 이상 어학원의 생활보다는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고, 단순히 체류증 연장의 명목으로 어학원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그래.. 다시 돌아갈 수 있지.. 핑크빛 꿈을 꿨지만 회색빛 현실을 경험하고 좀 더 현실적인 내가 되어서 돌아가는 거니까.. 나는 언제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는 혼자 감당이 가능할 때, 프랑스든 스위스든 다시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원래는 3학년 1학기까지 마친 대학 버리고 충분히 프랑스 대학으로 진학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멋진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랑스라는 나라가 나에게 미치도록 매력적인 나라가 아님을 확인했고, 합리적 선택은 한국 대학을 먼저 졸업하는 것임을 다시 뼈저리게 느끼며.. 약 한 달 뒤 복학을 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친구들이 다 졸업하는 시기에 막학기를 같이 다닐 수 있음에 기뻐하며.. 그렇게..
처음 프랑스에 가려고 했을 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로 나를 말린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도 직접 경험해 봐야 느끼는 나였다. 그래서 잘 다녀왔고 후회가 없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사소한 부분부터 성장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