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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품은 물병

동화

by 인산

조그만 플라스틱 물병이 길가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어요.

빈 물병은 집 없는 강아지처럼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녀요.

물병은 슬펐어요.

얼마 전, 물이 가득했을 때 누군가 자기를 어루만지며 소중하게 안아 주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요.

왜 이렇게 버려졌는지, 물병은 알 수 없어요.

어둑해진 거리에 비가 오기 시작해요.

물병도 비를 맞으니 시원해요.

언젠가 자기와 입 맞추며 물 마시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요.


“쿨, 쿨, 쿨.....”


빗물이 흘러 물병을 깨끗이 씻어 주어요.


“맞아! 난 물 하고 친구야! 내 안에 물이 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소중히 여겨 줬어!”


갑자기 물병은 깨달았어요.



밝은 햇살이 비치자, 누군가 물병을 집어 들었어요.

“어, 어디 가는 거지?”


물병은 어디론가 실려 갔어요.

그곳은 생수 공장이었어요. 물병은 기계에 들어가 마구 돌았어요. 센 물줄기가 물병을 따갑게 내리치기도 했어요. 그러더니 깨끗한 물로 가득 채워졌어요.


“와 드디어 내 안으로 물이 들어왔어! 다시 살아난 기분이야!”


물병은 환호성을 질렀어요.

물병은 다른 친구들과 나란히 시원한 냉장고에 진열됐어요.



어느 날, 작고 부드러운 손이 물병을 집었어요.

아이의 손이었어요. 아이가 물을 마시며 말했어요.


“아, 시원하다! 물맛 진짜 좋다!”


물병은 기뻤지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물맛만 칭찬하고, 난 칭찬 안 해주네? 그럼 난 뭐야? 물이 다 없어지면... 난 또 버려지는 거야?”


물병은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예전에, 길가에 버려졌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사람들은 내가 필요한 게 아니야. 내 안에 있는 물이 필요한 거지.”


몸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어요.

한 방울, 한 방울...

그 한 방울이 정말 소중했어요. 사람이나 물병이나 말이죠.

물이 다 비워지자, 물병은 눈을 감았어요.


“이젠 다 끝났어!”




얼마나 지났을까요?

물병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어, 쓰레기통이 아니네.”


물병은 의아해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어요.

그때 갑자기 커다란 가위가 다가왔어요.


“으악! 나를 자르려는 거야?!”


놀란 물병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정신을 잃었어요.



뭔가 간질이는 것 같아 물병은 살며시 눈을 떴어요. 강한 햇살이 눈을 아프게 찔렀어요.


“아야!”


물병은 얼른 눈을 감았어요. 그런데 가만,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뭐지?”


물병은 실눈을 뜨고 자신을 살펴보았어요.

“아!.....”


자신을 내려다보니, 한쪽이 잘려있었고 흙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작은 꽃 한 송이가 심겨 있었어요.


“우와... 나... 화분이 된 거야?”


익숙한 그 손은 정성껏 물을 주었어요.

물이 흐르며 흙을 적시고, 꽃은 미소를 지었어요.

물병은 더는 물을 담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꽃을 품은 지금, 스스로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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