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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에세이

by 인산

글쓴이의 기억을 붙잡는 글은 그의 이력서다. 글은 살면서 만난 사람들, 읽은 책들, 본 연극과 영화들, 다녀온 장소들까지, 모든 것이 종합된 결과다. 이들이 머릿속에 호수처럼 고여 있다가 글로 흘러나오면, 처음에는 예상한 대로 흐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낯선 것들이 마구 솟구친다. 마치 처음 마주한 것처럼 느껴지는 생각들, 이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글은 생각을 정리한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행위 속에서 생각이 생겨난다. 손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 눈은 모니터 위에 생겨나는 문장을 따라가고, 입은 속으로 그것을 읽는다. 그러는 사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나중에 자신이 쓴 글을 읽고 나서 ‘이걸 내가 썼다고?’ 하는 놀라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 지점에 이르면, 글이 생각보다 앞선다. 그래서 생각을 깊이 하고 싶다면, 혹은 자기도 모르는 자기 생각을 알고 싶다면, 글쓰기를 하면 된다. 이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논리다. 글을 쓰는 시간은 곧,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다. 손을 움직이는 동안 마음속 어딘가로 깊이 들어가 자신을 바라본다. 그만큼 집중적으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경험은 많지 않다.


말할 때는 보통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즉흥적으로 말한다. 준비가 없다는 건,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이나 의도하지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은 한번 나오면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이 말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말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때론 감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감정이 있어서 말을 하지만, 말하다가 감정이 생겨나기도 한다. 말은 솔직하고 우직해서 때로는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에 비해 글은 정제된 표현이다.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여 다시 읽고 고칠 수 있다. 그래서 말보다 세련되지만, 동시에 말의 우직함이나 즉흥성은 줄어든다. 말이 감정적이라면 글은 이성적이다. 글을 쓸 때 우리는 날카롭게 살아있는 이성으로 그에 집중하게 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쓰는 것 같지만 쓰다 보면 정리된 글이 된다. 완성된 글이 아닐지라도, 초고를 써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초고만 있다면 이후의 다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처럼 글쓰기는 정제와 논리의 과정을 포함한다. 처음 써 내려간 초고는 글의 뼈대가 되고, 이를 다듬는 과정에서 글은 더욱 견고해지며 설득력을 얻게 된다. 독자에게 글의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려면,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를 활용하거나 주장의 근거를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논지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간결하고 능동적인 문장을 사용하고, 문장 구조를 다양화해 리듬을 살리면 독자의 이해와 공감도 훨씬 쉬워진다.


글은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과 깊은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그 생각을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다듬어 세상에 내보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몰랐던 생각을 발견하고,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우리가 글쓰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나를 찾아가고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글은 그저 문자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담고 타인과 연결되며 기억을 지속시키는 특별한 행위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글은 생각의 탄생이자 자기 발견의 도구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꺼내는 게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흩어져 있던 기억과 경험들이 문장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이루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감정과 생각을 발견하게 된다.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빚어내는 손이다.


둘째, 글은 기억의 저장소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말은 ‘지금 여기’에서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글은 ‘지금도 거기’에 존재한다. “나는 말한다, 고로 지금 존재한다”는 말이 말의 속성을 보여준다면, 글은 “나는 쓴다, 고로 계속 존재한다”는 식으로 시간의 벽을 넘는다. 글은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고 사라짐에 저항하는 개인의 흔적이 된다. 누군가의 삶과 생각을 증언하는 ‘문자화된 이력서’이기도 하다.


셋째, 글은 소통과 연결의 매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타인과 연결되길 원한다. 글은 시공간을 초월해 생각과 감정을 나누게 해주는 매개체다. 정보를 제공하고 감동을 전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도구로서 글은 고립된 사유가 아니라 공유된 지식이 된다. 결국 글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다.


넷째, 글은 정제된 의도적 표현이다. 말은 순간의 감정이나 상황에 휘둘릴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생각은 명료해지고 표현은 논리적이 되며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글은 감정적 반응이 아닌 의도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글은 감성보다는 이성의 산물이며 그만큼 신중하고 세련된 언어다.




이런 이유로 브런치 스토리에서 꾸준히 글을 써내는 작가들은 단지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다듬고 과거의 경험을 기록하며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은 글이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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