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어있음은 없는 것이 아니라 차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결핍은 모자란 것이지만, 부족함의 없음은 충만하다. 그러므로 비어있음은 충만한 것들에 화답한다. 비어있음은 무(無)가 아니라, 더 이상 무엇도 필요하지 않은 충분함이다. 나는 나를 비우는 공복이 좋다.
넘치는 것이 풍요로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답답함이 있다. 꽉 찬 것은 더는 채울 수 없으며 비어있는 곳이 없으므로 여지가 없다. 반대로, 비어있음은 부족하고 쓸쓸한 상태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는 여백의 충만함이 있다.
비어있음은 그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가 아직 오지 않았거나 빠져나간 자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욕망도 어떤 기대도 간직하지 않은 상태, 더 이상 채워야 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우리는 흔히 무엇인가를 채워야 마음이 편하다고 믿지만, 정말 평안한 순간은 오히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순간, 곧 비어있는 상태에서 온다.
결핍은 채워야 할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결핍은 늘 긴장감과 조급함을 낳는다. 그러나 부족함이 없는 상태, 다시 말해 충분함 속의 비움은 그 자체로 완성이다. 더 이상 갈구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며 나 자신에게 충분히 머무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유와 마주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채운다. 지식, 관계, 재물, 목표! 하지만 그러한 채움 속에서 때때로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러니 가끔은 비워야 한다. 내 안에 필요 없는 생각들을 비우고, 내게 맞지 않는 역할들을 덜어내고, 억지로 떠안은 감정들을 놓아주는 것. 그것이 진짜 채움의 시작이다.
이런 상태를 ‘공복(空腹)’이라 부르고 싶다. 단순히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라, 내 안에 남겨진 것을 털어내고 내면의 소음을 지운 상태! 그 공복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아무것도 채우지 않아도 괜찮은 나, 말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나. 세상의 소리와 요구로부터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머무는 시간, 그게 바로 비어있음이 주는 충만함이다. 그 속에서 나는 다음을 노래한다.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길게, 숨을 내쉽니다.
내 안에 가득 찬 생각들을
하나씩 내려놓습니다.
어떤 것도, 지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지금,
나를 비우고 있습니다.
그 비움은 모자람이 아닙니다.
더 이상 채울 것이 없을 만큼,
이미 충분하다는 자각입니다.
비어있음은 결핍이 아닙니다.
부족함도 아닙니다.
그것은 더 이상 바라지 않아도 되는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입니다.
나는 더 이상 서두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 이유도,
무엇을 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로서 충분합니다.
내 안의 소음을 잠재우고,
남겨진 감정을 쓰다듬으며,
나는 나 자신과 다시 연결합니다.
비움 속에서,
나는 오히려 가득 찬 나를 느낍니다.
채우지 않아도,
더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만합니다.
숨을 들이쉬며, 나를 받아들이고
숨을 내쉬며, 나를 놓아줍니다.
오늘, 나는 기꺼이 나를 비웁니다.
나는 나를 비우는 공복이 좋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자유롭고,
그 속에서 나는 평화롭습니다.
그 비어있음에서,
나는 나와 함께,
충만하게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