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제5화

동화

by 인산

“오늘은 멀리 가자.”


식구들이 나가자 아이는 똥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똥이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는 갑자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난다.


“저기 보이지? 저 봉우리. 꼭 가고 싶었거든.”


아이는 하늘 아래 까마득한 산봉우리를 가리킨다. 아무리 멀고 험해도 똥이만 있으면 못 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검불을 헤치고 헐떡거리며 한참을 올라가니 목과 등에 땀이 흐른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검은 구름이 가득하다. 아이는 땀을 닦으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나무숲에 감탄한다.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을 지나자 잡목이 나타난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 큰 나무들이 하늘로 솟아있다. 나무와 풀과 바위가 어우러진 곳에 다다르니 후드득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떨어진다. 상큼한 풀 냄새가 난다.


“시원하다.”


아이는 두 손바닥으로 빗방울을 받는다. 더욱 어두워진 하늘은 갑자기 번쩍거리며 천둥소리를 낸다.


“번쩍번쩍.... 우르릉 꽝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굵어진다.


“똥아 이리 와.”


아이는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는 똥이를 데리고 커다란 나무 밑으로 간다. 두꺼운 줄기에는 이끼가 가득하고 하늘로 향한 끝이 보이질 않는다. 나무 밑은 그런대로 비를 피할 만하다. 하지만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자 그곳에도 커다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어떻게 하지?”


나무 밑동에 바싹 붙어있던 아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나무 밑동 위로 드러난 뿌리들 사이로 커다란 구멍이 눈에 띈다. 비가 더욱 굵어지는 바람에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얼른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똥이도 따라 들어온다. 어둡긴 하지만 그럭저럭 비를 피할만하다.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구멍 안이 훤하다. 구멍 속에는 검은 나비들이 무더기로 앉아 있다. 아이는 나비를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문득 멈춘다. 한꺼번에 앉아 있는 나비를 보니 약간 겁이 난다.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자 숲은 음악회를 연 것처럼 요란하다. 나무와 풀 사이로 뽀얀 김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장막을 씌운 것처럼 산 전체가 뿌옇다. 사정없이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을 받아내는 나뭇잎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아이는 똥이를 쓰다듬으며 안개와 소리로 가득 찬 숲을 바라본다. 숲 속의 빗소리에는 말할 수 없는 아득함이 들어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둥소리가 잦아들고 빗방울이 점점 약해지더니 잠깐 사이에 뚝 그친다. 나뭇잎에 매달려있는 물방울만 똑똑 떨어진다. 나무 사이로 비친 하늘에 먹구름이 심하게 움직인다. 간간이 파란 하늘도 보인다.

“가자.”


앞으로 갈까 뒤로 갈까 망설이던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좀 전에 건넜던 계곡에 물이 콸콸 넘쳐난다. 아까는 실개천이었는데 어느새 거대한 물살이 화난 듯 힘차게 흐른다. 삽시간에 물이 불어난 계곡은 으르렁거리는 산짐승처럼 사납다. 건널 용기가 나지 않자 머리를 긁적이던 아이는 계곡을 따라 다시 위로 올라간다. 빗물을 머금은 고무신이 미끄러지며 자꾸 벗겨진다. 위로 올라 갈수록 경사가 가파르다. 다리가 더러워진 똥이도 힘이 부치는지 미끄러진다. 어느 정도 오르니 계곡물이 줄어들고 쓰러진 나무가 저쪽까지 닿아있어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건너자.”


아이는 허리를 굽혀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 계곡을 건넌다. 이끼가 끼어 있는 나무가 미끄럽다. 똥이도 아이를 따라 건넌다. 무사히 계곡을 건너자 아이는 심호흡을 한다. 길도 없이 물기가 가득한 산을 내려오자니 미끄러워 더욱 조심스럽다. 아차 하는 사이 손에 잡은 풀이 뽑아지면서 아이가 쑥 미끄러진다. 손 쓸 틈도 없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구르는 대로 몸을 내맡긴다. 미끄러지던 아이는 쿵 하고 무언가에 부딪힌다. 큰 충격을 받은 아이는 짧은 비명을 지른다. 아이는 정신을 잃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위쪽에서 똥이가 끙끙거리며 어찌할 줄 모른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향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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