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제6화

동화

by 인산

얼마가 지났을까. 아이는 정신이 들었는지 몸을 움직인다. 똥이가 아이의 얼굴을 핥고 있다. 어느새 숲 속은 어두워졌다. 몸을 일으켜 보지만 온몸이 쑤신다. 무릎도 욱씬거리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다.


“더 내려가기 힘들겠다.”


아이는 널브러진 신발을 신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밤샐 장소를 물색한다. 조금 더 내려가자 커다란 나무들이 엉켜있는데 두꺼운 나무줄기 사이로 약간의 공간이 열려있다.


“여기가 좋겠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끼와 나뭇잎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냄새만 참아낸다면 그런대로 밤을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자리를 편편하게 고른 후 아이는 몸을 눕히고 똥이를 안는다. 바닥은 차가운데 똥이 털에서 따스한 기운이 전해온다. 온몸이 나른하고 무릎도 쑤신다. 숲은 검은 암흑으로 변해간다. 잠깐 잠이 들었나 싶은데 똥이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아이도 갑자기 눈을 떴다. 목털을 세운 똥이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어둠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린다. 똥이의 떨림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왜 그래?”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킨다. 똥이가 노려보고 있는 곳을 쳐다보니 촛불처럼 생긴 붉은 불덩이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아이는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린다. 머리가 쭈뼛거리며 식은땀이 흐른다.


“저게 뭐지?”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보니 불이 한두 개가 아니다. 붉은 불덩이가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깊은 산속에는 도깨비불이 있다는 할머니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큰일 났다. 똥아, 그냥 가만히 있어.”


아이는 으르렁거리는 똥이 목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꽉 붙잡는다. 촛불이 흔들리듯 불덩이들이 어지럽게 움직인다.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아이와 똥이는 바싹 긴장하며 더욱 몸을 움츠린다. 뒷걸음치면서 으르렁거리던 똥이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며 힘차게 짖어댄다. 팽팽한 긴장감이 산속으로 퍼진다.


“컹, 컹, 컹”

“가만히 있어. 짖지 마.”


그러나 한번 짖기 시작한 똥이는 멈출 줄 모르고 미친 듯이 짖어댄다. 순간 불꽃들이 하나로 뭉쳐 횃불처럼 커다란 불꽃이 된다. 하지만 산속은 여전히 어둡다. 횃불이 원을 그리며 어지럽게 날더니 나무에 펑하고 부딪힌다. 전체가 환해지며 눈이 부시자 아이가 눈을 꼭 감는다. 바로 그 순간 똥이가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힘차게 뛰쳐나간다. 아이도 엉겁결에 몸을 세우긴 했지만 똥이를 좇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다. 잔가지를 붙잡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하나로 모였던 불꽃이 춤추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똥이가 짖어대는 소리도 점점 아득해진다.


“똥아, 똥아, 똥아!”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똥이를 부른다. 숲 속의 어둠은 공허한 아이의 목소리를 날름 삼켜 버린다. 불빛도 똥이도 어둠 속에 묻힌다.


“똥아...”


아이는 몸을 떨며 똥이를 부른다. 귀를 기울이지만 똥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똥아...”


잠깐 잠이 들었던지 뻔쩍 눈을 떠보니 어느새 숲이 환하다. 새들이 나무 사이를 오가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바람결에 따라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누군가 불을 피운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연기 같은 안개가 솟아오른다. 아이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무 틈새에서 나와 사방을 살핀다.


“똥아... 어딨어?”


아이는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며 똥이를 찾는다.


“똥아!”


아이는 두 손을 입에 대고 힘껏 불러본다.


“똥아... 똥아... 똥... 아... 똥... 아...”


메아리만 공허하게 울려댈 뿐 똥이는 흔적도 없다. 새들이 놀라 푸드덕거리며 날아간다. 배도 고프고 무릎도 아프다. 아이는 똥이를 부르며 하염없이 걷는다. 어디로 가야 마을을 만날지 알 수가 없다. 다리가 가는 대로 그냥 아무렇게나 걷는다. 바닥은 미끄럽고 무릎은 아프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점점 힘이 빠진다.


“똥아...”


힘이 빠진 아이는 습관처럼 똥이를 부른다. 작고 푸른 새들이 낮게 날아다니고 물이 고인 웅덩이에 이상하게 생긴 잠자리가 앉아 있지만 아이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어둡고 울창한 숲에서 금방이라도 커다란 짐승이 뛰쳐나올 것 같다. 미끄러져도 넘어져도 아이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들거리는 다리로 조심스럽게 내려오는데 저 멀리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똥아...”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크게 똥이를 부른 다음 귀를 기울인다. 새들의 날개짓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잘못 들었나 싶어 막 움직이려는데 다시 소리가 똑똑하게 들린다.


“똥아”


아이는 똥이를 힘껏 부른 다음 두 손을 귀에 댄다. 저쪽에서 똥이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린다.


“똥아”


아이는 수풀을 헤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서둘러 뛰어간다. 똥이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똥아 어딨어?”


똥이는 커다란 바위 아래 웅덩이에 빠진 채 고개만 내놓고 있다.


“거기 왜 그러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바위가 미끄러워 쉽게 내려갈 수가 없다.


“똥아 기다려.”


마음이 급해진 아이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본다. 저쪽에 나무를 칭칭 감은 칡넝쿨이 있다. 아이는 칡넝쿨을 힘껏 끌어당겨 허리에 묶고 아래로 내려간다. 똥이가 낑낑대며 웅덩이에서 바동거린다.


“가만히 있어”


겨우 웅덩이에 닿은 아이가 똥이 앞다리를 붙잡고 막 끌어내려는 찰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칡넝쿨이 툭 하고 끊어진다.


“아이고!”


풍덩 소리를 내며 아이와 똥이는 한꺼번에 웅덩이에 빠져 버린다.


“큰일이다. 이걸 어쩌지...”


겨우 얼굴만 내놓고 아이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내가 밀어줄게. 한번 올라가 봐.”


아이는 두 손으로 똥이 엉덩이를 힘차게 밀쳐보지만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기란 쉽지 않다. 똥이는 다시 풍덩하고 빠져 버린다. 아이는 금방 피곤해진다. 스르르 눈을 감자 똥이가 아이의 얼굴을 핥는다. 정신을 차린 것도 잠시 아이는 어느새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 모습이 보이고 저만치 걸어가는 삼촌의 모습도 보인다. 어깨에 무거운 연장이 들려있다. 힘겹게 연장을 지고 가다 땅바닥에 주저앉는 순간, 뭔가가 강하게 잡아당기는 것을 느낀 아이가 번쩍 눈을 뜬다. 언제 올라갔는지 바위 위에서 똥이가 아이를 묶고 있는 칡넝쿨을 물고 뒷걸음질 치고 있다.


“아... 똥이.”


아이는 죽을힘을 다해 바위 위로 올라선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이가 똥이의 얼굴을 비벼댄다. 여전히 젖어 있는 똥이 몸은 불에 탄 것처럼 여기저기 그을려 있다.


“이게 뭐야?”


아이는 똥이 털을 살피다가 얼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찾아서 내려가야 해.”


아이는 똥이를 앞세우고 아래로 내려간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걷기도 힘들다. 몇 걸음만 옮기고 주저앉으려는데 울창한 숲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키 작은 잡목이 나타난다. 확 트인 잡목 사이로 저 아래 마을이 보인다. 마을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버섯 같다. 갑자기 힘이 난 아이는 똥이를 얼싸안고 외친다.


“살았다. 마을이다.”


똥이도 마을을 향해 크게 짖어댄다.


“컹 컹 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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