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제10화

동화

by 인산

습하고 이끼 낀 낯선 곳에 검은 나비들이 무더기로 날아다니고 있다. 정신이 든 아이가 고개를 들어보니 팔과 다리가 꽁꽁 묶여 있어 움직일 수가 없다. 시커먼 개미들이 아이의 얼굴과 몸에 그물그물 기어오른다.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가 심하게 도리질한다.


“저리 가.”


개미들이 사라지자 잠자리들이 날아와 아이의 둘레를 빙글빙글 돈다. 잠자리들이 얼굴로 날아들자 아이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저리 가란 말야.”


아이가 울먹이며 고함을 친다. 잠자리 떼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꿀벌들이 날아든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비행기 소리 같다. 아이는 무서워 눈을 질끈 감는다. 저쪽 한가운데 엄청나게 큰 누런 왕치가 앉아 있다. 왕치는 때때기에게 때때기는 여치에게 여치는 메뚜기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메뚜기는 목이 없고 여치는 날개가 없으며 왕치는 다리가 없다. 휠체어를 탄 곤충도 있고 목발을 한 곤충도 있다.


“넌 우리를 마구마구 잡아 죽였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친구들을 짓밟았다. 곤충의 이름으로 사형 선고를 내린다. 죽기 전에 할 말 있으면 해 봐.”


놀라고 당황한 아이는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거 봐. 할 말 없지? 넌 곤충들을 이유 없이 죽였어. 그러니 너도 죽어야지.”


아이는 발버둥 치며 고함을 지른다. 이쪽에는 사마귀가 저쪽에서 시커먼 거미가 붉은 입을 쩍 벌리고 나타난다.


“잘못했어. 아무 생각 없었어. 그냥... 심심해서 그랬어.”

“심심해서 그랬다고? 넌 심심풀이 땅콩이었지만 우린 가족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야 했어. 너 때문에 형제를 잃었고, 자식을 잃었고, 부모를 잃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앞으론 안 그럴게. 절대 안 그럴게.”

“앞으론 안 그런다고? 허. 이제 그런 말 필요 없어. 죽을 테니까.”


무서운 사마귀와 거미가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입을 벌리고 아이에게 다가온다. 창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너무너무 무섭다.


“아 악! 살려 줘. 잘못했어.”


아이가 외마디를 지르며 눈을 뜬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악몽을 꾸나 보다.”


누군가 아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잘못했어.”


아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한다.


“가만! 움직이면 안 돼. 지금 일어나면 안 돼. 그냥 그대로 있어.”


누군가 아이의 가슴을 누른다. 아이는 몸을 일으킬 수 없다. 향냄새가 아이의 콧속을 파고든다.


“여긴... 어디지?”

“이제 좀 정신이 드나 보다.”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똥이는?”


그러자 똥이가 끄응 소리를 내며 아이의 얼굴을 핥는다.


“이런, 개 이름이 똥이구나.”

“똥아!”


아이가 두 손으로 똥이를 안는다.


“이 개 아니었으면 넌 죽었어. 갑자기 나타나서 얼마나 짖어대는지. 정말 똑똑한 개다.”


여자가 말한다. 여자 옆에는 까까머리가 조그맣게 앉아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방안에는 별별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잠자리채...”

“잠자리채? 여기 있다. 걱정 마라.”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목이 말라 입맛을 다시다가 눈을 뜬다.


“배고프지?”


까까머리가 말한다.


“물...”


물이 담긴 사발을 주자 아이는 단숨에 마셔 버린다.


“좀 더...”


까까머리는 놀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다시 물을 떠다 준다.


“정신이 좀 들어? 여기... 밥 먹어. 엄마는 마을에 갔어.”


아귀처럼 허겁지겁 밥을 다 먹은 아이가 묻는다.


“여긴 어디야? 넌 처음 보는데.”

“우리 집은 동네에서 떨어져 있어. 어두워졌는데, 갑자기 저 개가 나타나서 마구 짖어대는 거야. 엄마가 이상하다고 하면서 나갔는데. 자꾸 어디론가 잡아끄는 거야. 네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리 데려왔어. 조그만 늦었어도 죽었대.”


아이는 뱀에 물려 정신을 잃었던 것이 기억난다.


“혼자야?”

“응 엄마가 나가면 혼자 있어.”

“안 심심해?”

“여긴 놀 게 많아. 안 심심해.”


하긴 방안에는 이상하게 생긴 물건들이 널려있다. 장구, 북, 촛대, 부채, 방울... 까까머리는 방울을 흔들어 댄다.


저녁이 되어도 엄마는 들어오지 않는다. 두 아이와 똥이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신나게 뛰어논다.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달빛이 훤해진 늦은 시간에도 까까머리 엄마는 들어오지 않는다. 뛰다가 지친 두 아이는 깜빡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아이가 눈을 뜨자 언제 들어왔는지 까까머리 엄마가 곤하게 잠자고 있다. 저쪽에서 까까머리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한다.


“엄마는 늦게까지 자. 시끄럽게 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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