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인간 사회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든 집단 따돌림의 현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가장 기본적 집단인 가정은 물론 학교나 직장 등 집단문화가 있는 곳이면 예외 없이 집단 따돌림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집단 따돌림은 왜 생겨나는 걸까요? 그에 대한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질적인 존재를 만들어 자신과 그를 구분하고 그를 배척함으로써 집단의식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집단 내의 갈등을 특정한 개인에게 떠넘겨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심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과 동조하지 않으면 자기가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집단 따돌림의 원인이라는 것이죠. 또한, 권력자가 힘을 과시하기 위해 특정한 누군가를 억압하는 현상이자 경쟁 사회에서 약한 사람을 배척하는 분위기에 편승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문제는 따돌림 대상자는 정도가 심해지면 두려움과 고통에 휩싸여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 따돌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근본적으로 없애기는 어렵더라도 이를 줄이고 예방할 방법은 분명히 있습니다.
따돌림의 고통과 성장의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안데르센의 <미운 아기 오리>입니다. 우리는 이 동화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따돌림의 단면과 그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운 아기 오리>는 주인공 미운 아기 오리가 온갖 고생을 하다가 우아한 자태의 어른 백조로 성장한다는 성장 동화입니다. 어쩌다가 오리 엄마는 백조알을 품게 되었습니다. 형제 중에서 제일 늦게 부화한 미운 아기 오리는 생김새가 남다릅니다. 미운 아기 오리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이질적인 형제들 틈에서 따돌림을 당합니다. 백조 새끼가 미운 아기 오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는 겉모습이 달랐기 때문인 것이죠. 오리 형제들은 덩치만 크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막내 오리를 왕따 시킵니다. 집단 따돌림에서 외적 생김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한 집단에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른 낯선 누군가가 들어오면 텃세를 부립니다. 외국에서의 삶이 쉽지 않은 것은 언어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면 미운 아기 오리처럼 견딜 수 없는 우울과 소외감이 생겨납니다.
동화 속 이야기는 결국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하는 해피엔딩이지만, 주인공은 그렇게 결말이 맺어지기까지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동화의 내용을 보면 미운 아기 오리는 태어나자마자 형제들에게 놀림감이 됩니다. 오리 형제들은 그들의 눈에 이상하게 생긴 막내를 보며 못생겼다고 놀려대죠. 자신들과 다르다고 못생겼다고 결정해 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처음엔 방어해 주던 엄마마저 다른 자식들과 다른 미운 아기를 지켜주는 데 한계를 느낍니다. 견디다 못해 미운 아기 오리는 결국 가출을 감행합니다. 집은 자기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여야 하지만 미운 아기 오리는 집을 떠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집을 떠난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여하튼 아기 오리의 가출은 스스로 무언가 해결책을 시도하는 용감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심과 행동은 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줍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기댈 곳은 부모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태도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곧 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가 부모도 자기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면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실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죠. 집단 따돌림과 복수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도 주인공은 자신보다는 가해자의 편에 서는 엄마의 태도에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이제 미운 아기 오리는 넓은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미운 오리는 들오리나 기러기를 만나지만 그들과 친구가 되지 못합니다. 이미 가정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상실한 미운 아기 오리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추위에 얼어붙은 미운 아기 오리를 돌봐 준 것은 농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학대에 시달려 진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미운 아기 오리는 피해 의식에 시달리게 되고 농부의 아이들이 다가오자 또다시 괴롭히려는 줄 알고 도망칩니다. 자신이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쓰라린 경험은 미운 아기 오리에게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내면화하게 만든 것이죠. 어린 시절 왕따의 쓰라린 경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운 아기 오리는 농부의 아이들을 피해 도망치다 우유 통에 빠지고 밀가루를 쏟고 콩을 뒤집어쓰는 등 온갖 말썽을 부립니다. 일상에서 지나치게 떼를 쓰거나 말썽을 피우는 아이도 처음부터 말썽꾸러기는 아닙니다. 집단이라는 토양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나 정서 조절에 실패하면 아이는 본의 아니게 미운 아기 오리처럼 말썽꾸러기가 됩니다.
온갖 고난 끝에 미운 아기 오리는 결국 자기와 똑같이 생긴 무리를 만납니다. 그는 백조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감탄하지만 정작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감이 사라진 오리 새끼는 백조 무리에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하죠. 또다시 놀림감이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때 우연히 미운 아기 오리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속을 들여다보던 미운 아기 오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이 저쪽에서 우아한 자태로 헤엄치고 있는 백조들과 똑같았기 때문이죠.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알아차린 미운 아기 오리는 그들과 합류하여 친구가 됩니다.
사실 동화에는 왕따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미운 아기 오리처럼 환경을 바꾸는 것이죠.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를 만난다면, 자신과 닮은 집단을 만난다면 왕따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문제에 시달리는 아이가 있다면 얼른 문제를 파악하고 전학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동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하필이면 왜 그때 미운 아기 오리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즉 백조의 모습을 보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동안 미운 아기 오리는 물에 비친 자신을 수없이 봐 왔을 것입니다. 주인공은 외롭고 슬플 때면 물속에서 헤엄을 치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때에도 물에 비친 모습이 있었지만, 자존감이 완전히 떨어지고 피해 의식에 시달린 당시에 아기 오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현상입니다. 따돌림을 당하고 괴로움에 주눅이 들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자기는 의미도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면 온전한 자기 모습이 아닌 왜곡된 모습이 어른거리게 되죠. 동화 속 미운 아기 오리는 천만다행으로 눈앞에 우아한 백조 무리를 보는 순간, 그리고 그들이 한 동족으로서 함께 하기를 청하는 순간, 수정같이 맑고 투명한 물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운 아기 오리가 아닌 백조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는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보통 따돌림을 당했을 때 그를 위로해 주고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은 주위의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도 주고 약을 주는 것도 사람입니다. 따돌림으로 삶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진정한 친구와 만날 수 있다면 상처는 아물 수 있습니다.
진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미운 아기 오리는 가슴에 한을 품은 채 말썽만 피워대는 미운 백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동화 속의 미운 아기 오리처럼 사람도 성장하면서 비슷한 또래를 만나 어울려야 합니다. 그러한 친구가 있다면 삶은 더욱 행복해질 수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