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Nelken)> 꽃밭에서 피어난 무용

공연

by 인산

피나 바우슈(Pina Bausch, 1940~2009)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 무용극) 장르 중 대표작 중 하나인 <카네이션(Nelken)>은 1982년에 초연되었다. <카네이션>은 현대 무용사에서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그의 탄츠테아터 스타일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의 욕망과 폭력, 그리고 관계의 불가능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우슈가 ‘춤과 연극의 경계’를 해체하며 던졌던 질문,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는 지금의 불안한 세계 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이 재공연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감각과 기억을 다시 일깨우는 현재의 사건이다.

현대무용의 혁명가로 불리는 바우슈가 남긴 이 대표작은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작으로 공연했던 <카네이션>은 그의 타계 이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25주년을 맞아 2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11월 6일부터 9일까지 SIGNATURE 홀에서 공연되며, 이어 세종 예술의 전당에서 14~15일에 관객과 만난다.


탄츠테아터(Tanztheater) 개념


독일어로 춤(Tanz)과 연극(Theater)의 합성어인 탄츠테아터는, 이름 자체에서 이 장르의 본질을 알 수 있다. 탄츠테아터 개념은 바우슈가 1973년 부퍼탈 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발전되었다. 춤의 표현력과 연극의 서사적 장치를 결합하여 인간의 삶과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탄츠테아터는 다음의 구성 원리를 갖는다.

하나는 춤의 확장이다. 탄츠테아터에서 춤은 더 이상 정형화된 아름다운 동작이나 고난도의 기교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움직임으로 확장된다. 무용수들은 걷고, 뛰고, 주저앉고, 몸부림치는 등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 내면의 고독, 불안, 사랑, 분노와 같은 복잡한 감정 상태를 표현한다. 즉, 춤의 목적이 신체의 균형 잡힌 조화와 완벽성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질문에 답하는 감정적 진실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 하나는 연극의 침투로 언어와 오브제의 역할을 강조한다. 연극적 요소들은 춤의 추상적인 표현에 구체적인 상징과 서사적 단편을 부여한다. 가령, <카네이션>의 무용수들은 춤을 추는 중간에 대사를 말하고 노래를 부르고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이들 언어는 때로는 소통의 단절이나 사회적 억압을, 때로는 아름다움과 희망을 상징하는 연극적 장치로 기능한다. 소품과 무대 장치도 적극 활용된다. <카네이션>에서는 카네이션 꽃밭, 검은 양복, 의자, 의상, 종이 상자, 대형 셰퍼드 등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상징물이다. 이 소품들은 무용수들의 몸과 상호작용하며 춤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부여한다.

하지만 탄츠테아터는 일반 연극처럼 명확한 줄거리를 따르는 대신, 삶의 단면들이나 기억의 조각들을 콜라주처럼 파편으로 이어 붙인다. 이는 관객이 스스로 장면 간의 의미론적 관계를 맺고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연극적 장치다. 이렇듯 춤과 연극의 융합을 통해 탄츠테아터는 춤의 신체적 언어와 연극의 상징적 언어를 결합하여, 관객에게 깊고 다층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영원한 춤의 혁명가, 피나 바우슈의 철학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라고 말한 바우슈는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작하여 현대무용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존의 권위와 관습을 깨고 춤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 바우슈가 탄츠테아터를 창조한 주된 이유는 기존 무용 형식으로는 인간의 삶과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탄츠테아터 창조의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감정을 깊이 탐구하기 위해서다. 바우슈는 기술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사랑, 고독, 불안, 공포, 욕망 등 인간이 겪는 근원적인 감정의 진실성을 무대 위에 올리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춤과 결합한 연극의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무용수들에게 기술적 완벽함보다 개성과 연기력을 요구했으며, 다양한 국적과 신체 조건이 다른 무용수들이 자신의 비전형적인 몸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취약함과 아름다움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내도록 했다.

둘째, 무용의 형식적 틀을 깨기 위해서다. 당시의 주류 무용은 여전히 엄격한 기술과 형식에 갇혀 있었다. 바우슈는 이러한 관습과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춤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춤과 연극, 언어, 소품, 음악을 마구 뒤섞는 장르의 파괴를 통해 관객에게 보다 자유롭고 충격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그의 창작 과정은 무용수들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답변과 즉흥 연기를 콜라주/몽타주 방식으로 모으는 데서 시작된다. 이 방식은 무용수 개개인의 실제 경험을 작품에 반영하여, 일반적인 안무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진실성을 작품에 불어넣는다.

셋째, 일상과 현실을 무대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는 무용을 현실 세계와 분리된 환상적인 예술이 아닌, 일상의 부조리함과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는 매체로 활용하고자 했다. 특히 <카네이션>처럼 권력, 폭력, 억압과 같은 사회의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춤 동작에 더하여 연극의 요소들이 필요했다. 탄츠테아터는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순수 춤보다 훨씬 더 총체적이고 다층적인 방식으로 포착하기 위한 바우슈의 혁명적인 예술적 시도였다.


창작 영감과 구성 원리


<카네이션>은 1980년 여름, 바우슈가 남아메리카 투어 중 칠레 안데스산맥의 한 계곡에서 마주친 독특한 풍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그곳에서 양치기 개가 자유롭게 뛰노는 멋진 카네이션 들판을 바라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바우슈는 2000년 내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구성을 “젊음과 아름다움이 상징하는 희망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하였으며, 무대디자이너 페터 팝스트(Peter Pabst)는 이 희망과 현실이라는 이중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였다.

<카네이션>의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특징은 무대 전체를 수천 송이의 인공 및 실제 분홍색 카네이션으로 덮은 환상적인 무대다. 이 광경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며, 관객은 일종의 낙원이나 유토피아로 초대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면 이 아름다운 꽃밭 위에서 무용수들은 부조리한 상황을 연출한다. 특히 검은 양복과 독일산 셰퍼드로 상징되는 억압과 압제는 평화로운 공간에 예측할 수 없는 억압과 위험을 불어넣는다.


<카네이션>, 꽃밭 위 서사를 파괴하는 자유로운 무대


<카네이션>에서 카네이션꽃 무리는 자체로 압도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여기에 다양한 오브제, 음향, 의상, 언어, 움직임 등이 합쳐져 특유의 탄츠테아터가 완성된다.

무대의 오브제

<카네이션>에는 풍부한 오브제가 등장한다. 구체적인 오브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나아가 무용수의 몸에 물리적인 저항을 제공하여, 움직임의 강렬함과 의미를 증폭시킨다.

수천 송이의 화사한 분홍색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극장에 입장하는 관객은 탄성을 자아낸다. 이 압도적인 꽃밭은 관객에게 시각적인 충격과 함께 아름다움, 평화로운 낙원 이미지를 선사한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무용수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상황극 속에서 카네이션들은 짓밟히고 흩어진다. 이는 순수한 사랑, 아름다움, 희망이 현실의 폭력, 억압, 통제 속에서 훼손되고 상실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한국인에게 카네이션은 어버이날에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전하는 꽃이 아닌가. 그 꽃들이 짓밟히는 모습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렇듯 카네이션은 아름다움과 잔혹함,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인간의 삶 자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은유다.

여권, 마이크, 의자 역시 중요한 오브제다. 여권을 강압적으로 제시하기를 명령하는 검은 양복의 남자는 통제, 경계, 정체성, 이동의 자유와 관련된 주제를 상징한다. 자주 사용되는 마이크는 발언권, 소통, 혹은 과장된 자기표현과 관계가 있다. 무용수들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거나 절규하는 행위는 언어의 역할을 강조하며, 표현에 대한 욕구와 좌절을 보여준다. 한편,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의자들은 휴식처가 되기도 하지만 움직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어 삶의 불안정성과 고독을 시각화한다.


음향과 효과음

<카네이션>은 음향에서도 독창적이다. 음향과 소리는 작품의 복합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반 무용 작품이 하나의 작곡가나 장르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카네이션>에서는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사용한다. 낭만적인 클래식부터 대중적인 재즈와 샹송, 슬래거(유행가)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이는 작품의 부조리함과 양면성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가령, 작품에 따뜻함과 애수, 그리고 미국적인 대중문화가 특징인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낭만주의 시대의 서정적인 음악으로 아름다우면서 슬픈 분위기를 창조하는 슈베르트의 클래식 음악, 가볍고 경쾌한 유머 그리고 과장된 낭만성을 연출하는 프란츠 레하르(Franz Lehár)의 오페레타, 미국의 가수이자 코미디언으로 복고풍의 유머러스하고 직설적인 음악으로 잘 알려진 소피 터커(Sophie Tucker)의 노래, 감미로운 목소리는 낭만적이면서도 시대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테너 리하르트 타우버(Richard Tauber)의 음성이 펼쳐진다. 특히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조지 거슈윈의 음악 ‘The Man I Love’를 수어로 표현하는 처음과 끝 장면은 유명하다. 이 외에도 효과음으로 마이크로 확대된 무용수의 심장 소리, 무용수들이 직접 내는 대사나 외침, 단호한 구두 소리, 카네이션을 스치는 소리, 무용수들이 달리는 소리 등이 있다.

이처럼 가벼운 유행가와 장엄한 클래식의 충돌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효과음을 섞어 쓰면서 <카네이션>은 삶의 부조리함과 혼란스러움을 강조한다. 아울러 시대와 장르가 다른 음악을 혼합한 것은 경계 허물기는 물론 작품의 주제인 인간의 감정과 경험이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보편성을 획득하도록 한다.

의상의 의미

<카네이션>은 의상 디자인에서도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의상은 사회적 역할, 젠더, 억압, 그리고 해방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중요한 장치다. 의상 디자이너는 바우슈의 오랜 파트너였던 마리옹 치토(Marion Cito)다.

첫째, 작품 초반이나 중간에 등장하는 검은색 정장은 억압과 권위를 상징한다. 이 복장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짊어지는 규율, 형식, 억압의 굴레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둘째, 무대에서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의상 중 하나는 남성 무용수들이 입는 여성용 슬립 드레스다. 남성 무용수들은 여성복을 착용하고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카네이션 꽃밭을 뛰어다니거나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취한다. 이는 젠더 역할의 전복을 의미하며, 남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이나 강인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이 의상은 억압된 상황에서의 일탈과 해방 욕구를 표현한다. 드레스를 입고 장난치던 남성 무용수들이 셰퍼드와 통제자에 의해 다시 정장으로 갈아입는 장면은 자유의 억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면, 마지막 장면에서 정장 차림의 남성이 옷을 벗어던지고 다시 여성용 드레스를 입는 것은, 규칙이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작품의 메시지를 전한다.

셋째, 여성 무용수의 의상에는 우아함과 상실감이 공존한다. 여성 무용수들은 대체로 우아하고 세련된 하이힐과 드레스, 혹은 슬립과 같은 의상을 착용하는데, 이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취약성을 동시에 드러내어 짓밟힌 카네이션 꽃밭과 대비를 이룬다.


언어(대사)의 역할

바우슈는 공연에서 대사를 즐겨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연극처럼 서사를 매끄럽게 진행하거나 인물의 심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역할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는 의도적인 장애물이자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무엇보다도 바우슈는 대사를 통해 인간관계의 고독과 소통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카네이션>에서 독일어, 영어, 불어 등의 다양한 언어가 뒤섞여 나온다. 무용수들은 종종 서로에게 말을 걸지만, 명확한 대화나 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안무가의 의도다. 즉 현대인이 겪는 감정적 단절과 외로움을 청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무용수들의 언어는 의미 전달보다는 소리와 행위 자체에 무게가 있다.

또한 언어는 유머와 부조리의 장치로 사용된다. 엉뚱하거나 어색한 문장을 진지하게 반복하거나, 낯선 억양으로 발음하는 것은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며, 작품에서 제시하는 삶의 부조리함을 강조한다.

해외 공연에서 무용수들이 해당 국가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카네이션>의 유명한 특징이다. LG아트센터 공연에서도 한국어 대사는 갑작스러운 친밀감을 유도하여 무대와 객석의 경계 허물기의 일환으로 기능했다. 서툰 발음 자체가 소통의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현지화를 넘어 관객에게 자국어를 낯설게 느끼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소통의 불완전성이라는 주제를 보편적으로 확장하려 했던 안무가의 의도였다.


움직임의 해체와 재구성 : 일상과 클리셰의 반복


바우슈는 전통적인 무용의 기교나 아름다운 동작 대신, 일상적인 몸짓과 움직임을 사용하고, 이를 반복하거나 변형하여 인간의 본질과 사회적 패턴을 탐구한다. <카네이션>에서 무용수들은 고난도의 발레 기교나 추상적인 움직임 대신, 걷기, 뛰기, 울기, 웃기, 고함치기, 말하기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과 행동을 한다.

반복적인 몸짓을 통해 심화된 의미가 생성한 행동으로 ‘사계 행진(Nelken Line)’을 들 수 있다. <카네이션>의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사계 행진은 무용수들이 일렬로 서서 계절을 상징하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곱 가지 제스처를 반복하며 앞으로 걷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봄은 낮게 돋아나는 잔디를, 여름은 높이 자란 잔디와 따뜻하게 빛나는 태양을, 가을은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동작을, 겨울은 추위에 떠는 몸짓을 표현한다. 이러한 단순한 몸짓이 계속해서 쌓이고 반복되면서, 계절의 순환이나 인생무상과 같은 주제가 드러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소통


경계 허물기는 <카네이션>의 주요 주제다. 춤과 연극의 경계 해체는 나아가 사회에서 인간들 사이의 경계 해체로 확장된다. 인종, 계급, 빈부, 성, 세대 사이의 경계가 더욱 공고해지는 현상에 맞서 바우슈의 경계 허물기는 예술가의 부단한 노고가 느껴진다.

경계 허물기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전통 무용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단단한 제4의 벽은 <카네이션>에서 맥없이 무너진다.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기를 시도하며 관객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공연 초반에 그들은 객석으로 내려와 몇몇 관객을 무대 옆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객석을 향해 서툴게 말을 걸어 관객을 웃도록 한다. 왜 데려갔는지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그들이 객석으로 내려올 때, 누군가를 데리고 사라질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다들 궁금해한다. 비록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궁금증 유발 자체로 하나의 의미가 생겨난다.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 한 무용수가 관객 모두를 일어나 허그 동작을 함께 할 것을 권유하는데, 이 순간 관객은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의 일부가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경계가 엷어지거나 사라질 때 인간의 소통은 진정성을 얻게 될 것이다.


맺으며 : 총체 예술의 통찰과 울림


약 90분간 이어지는 무용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처음에 조심스럽게 꽃밭을 거닐던 무용수들은 이내 꽃들을 짓밟고 그 위에서 격렬하거나 때로는 아이의 놀이 같은 가벼운 몸짓을 보여준다. 이 꽃밭은 현실의 축소판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에는 유머와 폭력의 이중성, 아이러니와 날 선 풍자가 예민하게 공존한다. 꽃밭을 짓밟거나, 서로에게 강압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움직임은 냉소와 폭력적인 상황을 드러내며 관객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이는 바우슈 작품에 담긴 인간관계의 갈등과 억압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이다.

<카네이션>은 탄츠테아터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 실존과 사회의 근원적인 모순을 통찰하는 총체 예술의 정수다. 바우슈는 움직임의 해체를 통해 이 모순을 파고든다. 사계 행진 같은 단순한 반복 행위는 일상의 패턴과 억압의 굴레를 은유하고, 이질적인 음악의 콜라주와 다국어 대사는 현대인의 소통 불가능성과 정서적 단절을 청각적으로 구현한다. 특히 남성이 슬립 드레스를 입는 의상의 전복과 낯선 언어의 사용은 유머와 풍자를 통해 고정관념과 권위에 날 선 질문을 던진다.

<카네이션>이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바우슈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서사를 거부하고 파편화된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인 이 작품은, 관객에게 무대 위 아름다움과 부조리의 충돌 속에서 자기 삶의 단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의미를 되새김질하도록 이끈다. <카네이션>은 바우슈가 추구했던 인간 내면의 진실과 영원한 춤의 혁명이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증명한 걸작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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