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적 공연, '겨울 지나 여름'

공연 리뷰

by 인산

2025년 12월 28일과 29일, 창덕궁 소극장에서 (사)한국연극치료협회 산하 극단 ‘치유’의 정기 공연 <겨울 지나 여름>(연출 박미리)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치료사가 연출하고 연극치료사들이 직접 출연한 이 공연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울림을 준다. 겨울이 지나면 으레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오기 마련이지만, 봄을 생략한 채 곧장 여름으로 건너뛴다. 따스한 위로의 계절 없이 혹독한 고난(겨울)에서 곧바로 치열한 생존(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흐름은 어쩌면 우리네 삭막한 인생에 대한 은유다. 이는 고통 이후에 반드시 치유가 도래하리라는 낙관을 유보하고, 삶의 문제를 미화하지 않은 채 무대에서 정면으로 직면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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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적 공연의 메커니즘


치료적 공연은 연극치료의 모델 가운데 하나로, 완성된 공연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과정 중심의 일반적인 연극치료와 구별된다. 치료적 공연은 연극처럼 일정한 연습 과정을 거쳐 관객 앞에 결과물을 제시하지만, 이 과정과 결과는 치료적 목적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연기자-참여자는 자신의 상처나 억눌린 과거를 무대에서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고, 관객은 감상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고통을 인정하고 변화를 지지하는 증인의 역할을 한다. 치료적 공연은 대체로 세 단계를 거친다. 연습 단계에서 참여자의 개인적 이슈를 발굴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이를 연극적으로 표현하도록 돕는다. 공연 단계에서 정해진 텍스트를 관객 앞에서 연기하며, 이 과정에서 참여자는 자신의 삶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객관화의 경험을 하게 된다. 공연 이후에는 통합과 공유의 시간이 이어진다. 관객과 연기자, 혹은 연기자들 간의 피드백을 통해 무대에서의 경험을 실제 삶과 연결하고 이를 내면화한다. 이 과정에서 연기자는 완성했다는 성취감, 목소리를 직접 냄으로써 편견과 침묵에 맞섰다는 치유감, 그리고 고통을 역할로 다루며 감정에 압도되지 않은 채 자신과 대면할 수 있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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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프고도 유일한 치유의 성소


우리는 누구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기쁨보다는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이다. 그래서 인생은 종종 시시포스의 형벌이나 종교적 원죄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시련의 과정으로 비유되곤 한다. 〈겨울 지나 여름〉에 참여한 연극치료사들 역시 각자의 삶 속에 저마다의 개인적 이슈와 상처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는 가족이다. 가족은 개인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는 근원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 삶의 주요 화두라 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가족의 이야기는 단순한 극적 설정을 넘어, 출연진 각자의 실제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두려운 상처를 관객 앞에서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미스터리한 자기 드러냄이 무대에서 가능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연극이 지닌 고유한 치유의 힘, 즉 허구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더 깊은 진실과 마주하게 하는 힘 덕분이다. 무대는 상처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상처에 압도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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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라는 방패, 그리고 변형


치료적 공연의 핵심은 자기 폭로를 가능하게 하는 무대의 심리적 기제에 있다. 현실에서 자신의 이슈를 드러내는 일은 큰 저항과 불안을 동반한다. 그러나 무대라는 특수한 공간에 서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를 허용하게 된다. 이때 결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역할이다. 연극치료의 핵심 요소인 역할은 참여자에게 안전함 속에서 자신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치료적 공연에서 역할은 참여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접 재현하기보다, 이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역할을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자기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아닌 극적 역설이 역할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역할연기는 자신을 다르게 체현하는 것으로, 자신 나아가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로부터 참여자는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 더 나아가 역할연기는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가 무대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상징적으로 충족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참여자는 역할을 매개로 부정적 신념과 갈등을 투사와 전이의 방식으로 외현화하고, 이를 성찰 가능한 대상으로 삼는다. 역할로 이동하는 상징적 전환은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치료적 공연 〈겨울 지나 여름〉의 참여자들 또한 자기인 듯하면서도 자기와는 다른 역할연기를 통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치유를 경험했을 것이다.


한편, 연극이 지닌 또 다른 치료적 근거는 연극이 본질적으로 변형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무대에서 인물과 사물,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는 연극적 관례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의된다. 이러한 변형은 인간의 정체성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재구성이 가능한 유연한 존재로 이해하는 연극치료의 이론적 기반을 이룬다. 관객과 참여자는 ‘불신의 자발적 중지’라는 전제하에 변형된 극적 세계에 동의하면서, 안전하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고통과 직면하게 된다. 변형의 관점에서 연극 무대는 마술의 세계다. 배우의 말 한마디에 바다가 되고, 몸짓 하나로 혹독한 겨울이 한순간에 여름으로 바뀐다. 이러한 변형은 허구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배우와 관객 모두의 지각과 의미 체계를 뒤흔든다. 그리하여 참여자에게 기존의 정체성과 역할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 방식과의 관계 양식을 실험할 수 있도록 한다. 변형은 단순한 상상이나 역할 놀이를 넘어, 자기 인식과 삶의 태도를 재구성하는 실존적 경험으로 작동한다.


이를 십분 활용하는 연극치료는 연극성의 본능을 억제하거나 교정하는 실천이 아니라, 이를 회복하고 활성화함으로써 참여자가 삶의 무대에서 유연하고 주체적으로 존재하도록 돕는다. 〈겨울 지나 여름〉에서도 이러한 변형이 자유롭게 일어난다. 인물 수만큼 배치된 검은 큐빅과 등퇴장을 상징하는 하얀 사각 프레임으로 구성된 미니멀한 무대는, 참여자의 선택에 따라 언제든지 재배치된다. 무대에는 세 가족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특정 가족만 부각되기도 한다. 공간과 조명의 변화는 곧 관계의 변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이는 인물의 심리적 변형과 직결된다. 이렇듯 치료적 공연은 역할을 통해 자기 노출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고, 연극적 변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한다. 무대의 참여자는 더는 고정된 피해자로 머무르지 않고, 삶의 역경을 직면하고 재연기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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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의 이야기와 연출 미학


조명이 밝아지면 비어 있는 무대에 해설자가 등장한다. 해설자는 관객에게 “당신 인생 최고의 날은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은 관객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과거의 시간을 더듬으며 자신의 기억 속으로 침잠한다. 해설자가 퇴장한 후 가수가 등장하여 질문의 맥락에 부합하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면 다시 해설자가 피켓을 들고 나타난다. 피켓에는 “내 인생 최고의 날 / 행복! 그런데 슬프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해설자, 가수, 피켓은 전형적인 거리두기 장치다. 이는 서사극의 형식을 차용한 것으로, 관객과 무대 사이에 일정한 틈을 유지하여 참여자에게 안정감 확보하도록 한다. 관객과 충분히 교감한 뒤, 참여자들이 무대에 등장해 각자의 인생 최고의 날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한때 찬란했던 가족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도입이 아니라, 가족 내 상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 감정적 토대를 마련하는 고도의 연출 전략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루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내는 과정은 일종의 웜업으로, 이후 더 깊고 솔직한 자기 노출을 가능하게 한다. 추억을 더듬는 행위는 문제의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정서적 동력이다.


이어 세 가족이 등장한다. 출연자 여덟 명이 모두 여성인 까닭에, 무대에 제시되는 가족 역시 여성들로 구성된다. 엄마와 두 딸, 할머니와 손녀, 그리고 세 자매의 가족은 이혼, 차별, 오해 등 각기 다른 형태의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가족 간의 갈등은 기대와 실망, 원망과 사랑이 뒤엉킨 복합적 감정의 층위를 보여준다. 가족은 왜 이토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다툰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우리는 예외 없이 부모나 형제, 자식이나 배우자를 떠올린다. 무대 위에 등장한 두 번째 피켓에는 “가족은 지옥 / 원망 – 불신 – 분노 – 사랑 – 행복 – 질투 – 죄책감 – 좌절 – 불안 – 두려움”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가족이 지옥인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에게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를 버리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인 이상 자식에게, 부모에게, 형제에게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기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고민하지 않는 데 있다. 극 중 손녀가 할머니에게 왜 자기 부모를 결혼시켰느냐고 따지는 장면은, 자신의 처지를 외부로 전가하는 태도가 가족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엄마에게, 자식에게 분노가 치밀 때 필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자기 성찰이다. 기대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왜 나는 그렇게 기대하지는 묻는 태도가 요구된다.


무대에서 가족 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세 번째 피켓이 등장한다.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싶어. 천사 – 악마 – 탑스타 – 신 – 재벌 – 손흥민 – 대통령 – 미스 유니버스 – 염라대왕 – 마법사…” 해설자는 관객에게 이 중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묻고, 관객은 손을 들어 응답한다. 이 장면은 욕망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관객 역시 극적 상황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장치다. 갈등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참여자 전원은 검은 옷을 입고 가면을 쓴 마녀가 된다. 마녀로의 변형은 이 공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녀는 일상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욕망과 충동을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다. 가족이라는 관계망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때의 마녀는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는 페르소나이자, 살풀이를 거행하는 무당에 가깝다. 무대의 마녀들은 각자 원하는 존재가 되어, 가슴에 묻어두었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한 마녀는 “무너져 내려라! 지옥 불 아래로! 다 사라질 때까지!”라고 절규한다. 여기서 지옥 불은 파괴보다는 불사조의 재탄생을 상징한다. 즉 죽음이 아닌, 과거의 상처를 통과한 새로운 삶으로의 이행을 뜻한다. 파충류처럼 엉켜 괴성을 지르던 마녀들이 사라지면, 해설자가 등장하여 이들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결국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거였어.” 그리고 ‘사랑받고 싶어서’의 노래가 흐른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가족 갈등은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눈 녹듯 해소된다. 이 클라이맥스 이후 인물들은 마치 허물을 벗은 듯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겨울 이후 사라졌던 봄이 다시 생겨난다.


이제 세 가족은 앞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간다. 흥미로운 점은 해결이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손녀 희진은 따돌림의 상처가 있는 세 자매의 막내 세민과 만나고, 교사인 미란은 동창생 세민과 재회하며, 희진의 할머니 오부자는 두 딸의 엄마인 성란과 만난다. 교묘하게 엮인 만남 속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봄을 되찾는다. 대단원에 이르러 해설자는 “겨울 지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당신은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등장한다. 이는 무대의 참여자들뿐 아니라 관객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삶에서 사라졌던 봄과 가을이 돌아왔다는 것은, 참여자들이 정상적인 계절의 흐름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관객 앞에 꺼내 놓은 이슈가 해소되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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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며 : 치유자를 위한 치유의 무대


치료적 공연에 참여한 연극치료사들은 타인을 돌보고 치유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해지기 쉽다. 이 점에서 공연을 통해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말과 감정, 가족 간의 상처를 드러낸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치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연습 과정에서, 그리고 관객의 반응을 체감하면서 이들은 깊이 있는 자기 돌봄을 경험했을 것이다. 한 참여자는 인터뷰에서 “가족에게 차별받은 상처를 관객 앞에서 말하는 행위 자체가 묵은 상처를 비워내는 경험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은 개인의 진술이자, 이번 치료적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진실이기도 하다. 이 무대를 통과한 연극치료사들 모두에게 〈겨울 지나 여름〉이 새로운 삶의 계절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 이 리뷰는 <연극평론> 2026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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