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친구가 인생을 결정한다

에세이

by 인산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고사다. 순전히 아들을 위해 세 번을 이사했다는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는 우리와 상관없는 강 건너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부지기로 행해지고 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세 번이 아니라 삼천 번이라도 이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대단한 부모들이다. 그만큼 환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나 ‘귤이 북쪽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도 전부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환경의 중요성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증명하려 애쓴 것이기도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것에 모두는 동의하고 있다.


환경을 특히 중요시했던 심리학은 행동주의 심리학이다. 일정한 조건에 따라 반응이 유발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개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던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반사는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개에게 먹이를 주면서 동시에 종을 쳤다. 청각적 기억이 미각적 반응으로 연결된 조건에 익숙해진 개는 이제부터 먹이를 주지 않고 종만 쳐도 침을 흘렸다. 이 실험을 통해 그는 조건 즉 환경을 변화시키면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인간 역시 일정한 환경을 제시하면 그 조건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또 다른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은 자신에게 건강한 열두 명의 어린아이를 맡겨준다면 프로그램화된 학습을 통해 원하는 유형의 전문가로 양육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성하여 계획된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행동주의자의 주장 말고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인간은 심리적·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의하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종은 도태되고 오로지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만이 자손을 번식하며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자손 번식과 영속적인 삶을 위한 필수적이다. 시베리아 혹한의 기후에 사는 인종과 적도 근처의 아열대 지대에 사는 인종이 각각 피부색과 체구가 다른 것은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한 결과다.


가족이라는 환경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 형제의 서열에 따른 개인 성격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성격 형성은 셋째라는 가족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결과일 것이다. 형제의 특성에 주목한 심리학자는 아들러이다. 일명 열등감의 심리학이라고도 불리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인간은 자아와 일치된 유기체로서 스스로의 인식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긍정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이 있으며, 살아가면서 느끼는 많은 동기나 욕구의 밑바닥에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보상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열등감을 느끼는 인간은 이를 보충하고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완벽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창조적 존재로서 사회적 자극을 받아 동기를 유발한다. 형제의 순서에 따른 특성 또한 제각기 주어진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갖게 된 성격이다. 아들러가 주장한 형제의 순서에 따른 특성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첫째는 윗사람에게 동조하는 경향이 강하며, 규칙과 법을 중시하는 성격이 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는 첫째가 갖고 있는 장남 혹은 장녀로서 독특한 성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첫째는 애교는 없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이기심과 독립심도 강한 편이다. 아들러는 첫째의 경우 이른 시기에 동생이 출생했을 때 퇴행과 적대감 반항과 질투를 심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심하면 두통이나 천식, 위장장애 같은 신체적 병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보았다.


둘째는 첫째보다는 동생이 생기는 것에 크게 민감하지는 않다. 이미 앞선 형제가 있으므로 그와 겨루고 화합하며 협동과 타협의 기술을 쉽게 배우는 편이다. 만일 첫째의 성격이 강한 편이라면 둘째는 현실 도피의 성향을 지닐 것이다. 대체로 둘째는 게으른 편이고 욕심이 많으며 거짓말이나 도벽의 위험이 있고 신경증적 성향이 강하며 한편으로 혁명가의 기질도 있다고 밝힌다.


막내는 언제나 귀염을 독차지한다. 가족의 막내로서 독립심은 부족한 편이나 경쟁심은 매우 강하다. 형제가 없이 외동으로 자란 자녀는 응석받이로서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다. 딸부자 집 외동아들은 여성적 성향이 강하거나 반대로 남성적 성향이 강할 수 있으므로 다른 아이와 충분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형제 서열에 따른 특성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거나 여러분 각자에게 적용하고 싶다면 인터넷에서 ‘아들러, 형제 서열’을 치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형제 서열에 따른 아들러의 성격 판단은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전체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대중 심리가 작용하면 혼자만의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나치가 득세하던 독일에서 그에 반대하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주체성이 확실한 사람들이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이 적을 행해 총을 쏘아대고, 잔인한 확인 사살도 서슴지 않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동도 인간이란 환경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파리도 잘 죽이지 못하던 순진한 젊은이가 전쟁이라는 독특한 상황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비윤리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특히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 환경이 주는 영향은 대단하다. 그런 까닭에 가족과 친구가 중요하고, 유치원이나 학교가 중요하다. 가족은 매우 중요한 환경이다. 만일 부모가 자식의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적합한 방식으로 소통한다면 그 가정은 좋은 환경이 된다. 신학기가 되면 학교에서는 가정환경 조사를 한다. 부모가 다 있는지 이혼가정 혹은 결손가정인지 형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생활 수준은 어떤지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가정환경을 파악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조사는 피상적이고 외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제대로 가정환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세밀한 데이터가 필요하므로 아이의 가정환경 전반을 심층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자동차 유무, 피아노 유무와 같은 물질적 수준으로 아이의 가정환경을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환경의 중요성을 안 이상 적어도 부모와의 면담을 통해 가족의 습관, 사고방식이나 신념 및 종교, 독특한 신화 및 문화, 양육 방식, 원가족과의 관계 등을 파악하면 아이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친구라는 환경


가족 다음으로 환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친구다. 친구 관계는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범위가 차츰 넓어진다. 특히 친구를 사귀는 것은 거주지의 환경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좋은 친구가 생기도록 맹자의 어머니는 이사라는 처방을 내렸다. 인생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해 흔히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가? 있다면 몇 명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때 별 고민 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몇몇 친구가 있다면 그의 인생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사람과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친구가 되고 어떤 사람은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들 중 누가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일까? “유유상종”, “초록은 동색”이란 말이 있다. 사람은 무엇인가 통하는 사람과 만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슷하다는 것은 주어진 환경이나 성격 및 외모가 비슷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생각하는 방식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도 포함된다. 자식이 삐뚤어지면 부모는 흔히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유상종을 적용한다면 꼭 남 탓을 할 수는 없다. 그러한 성향의 아이를 친구로 삼는 자기 아이의 특성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 부모는 적어도 친구가 그 아이의 성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중학교 학생들은 명문 고교에 입학을 하기 위해 치열한 입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한참 성장기의 감수성 많은 청소년에게 지나친 경쟁과 입시의 과열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부는 77년부터 소위 뺑뺑이를 실시하여 고교 평준화를 단행하였다. 고교 평준화에 따라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거주지의 고교를 배정받았다. 그러자 재미있는 현상이 생겨났다. 고급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고등학교가 우수한 입시 성적을 내면서 신흥 명문으로 떠오른 것이다. 명문 대학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인 신흥 명문 고교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식을 보내야 했던 부모들은 가짜로 주소지를 옮겼다. 소위 위장전입이 생겨났다. 요즘 인사청문회에서 종종 도마 위에 오르는 위장전입은 신흥 명문 고교에 자식을 입학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의 수단이었다. 위장전입은 자식 교육의 과열화가 낳은 부도덕한 사회 현상이면서 한편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환경이 이토록 중요하다면 명문 학군에 이사할 수 없고 조기 유학도 시킬 처지도 못 되는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고 현재 처지를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자식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한국의 어머니들은 묘한 상황에 부닥친 한국의 교육 현실을 대변한다. 환경이 중요하다면 조기 유학은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조기 유학이 자칫 아이를 망칠 가능성이 있고, 영어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본인이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말이다. 그러나 만일 한국 사회가 영어교육을 중시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균등한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외국에 유학을 가거나 외국어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충분히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정당한 성취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한 기회를 부여하고 그 결과를 따진다면 불만을 터뜨릴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회가 불균등하다고 느낀다면 사회는 분열되고 불평으로 가득 찰 것이다. 교육의 균등이라는 시스템 없이 이론적으로 조기유학이 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따진다거나, 낯선 문화에서 친구도 없이 유학을 갔다가 망친 사례를 나열하면서 조기 유학은 그다지 권할 바가 못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 역시 조건만 맞는다면 자식을 조기유학 시키고 명문학군으로 이사하려고 할 것이다.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정책 입안자는 누구나 원하는 환경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환경과 교육의 관점에서 주요 사항을 요약해 보자.


첫째, 가족과 연계된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특히 어릴 때의 교육은 주부양자(특히 엄마)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둘째, 생태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친구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행복한 삶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예술을 통한 전인 교육도 중요하다.

셋째 환경적인 측면에서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위인전을 읽어보면 가정에서의 교육은 아이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프로이트는 7세 이전에 모든 인간의 성격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학교 교육 이전에 이미 성격이 확립된다고 하니 가정이라는 환경이 인성, 대인관계, 사회성, 성격 형성에 있어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학교는 가정에, 가정은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문제는 가정이나 학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가 접하는 세상의 반은 가정이며 반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인간 발달단계에서 아이가 성장하여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 친구다. 아이든 어른이든 왕따를 당하는 소외현상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은 그만큼 친구 및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를 따라다니던 아이는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 부모는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아이의 태도 변화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여전히 부모의 끈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면 아이의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학교가 갖는 기능 중 친구 사귀기는 교과서를 학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학교 교육이 친환경적, 생태적이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서열을 매기는 교육이 아니라, 어울림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배우는 것이 생태교육이고 이런 방식의 교육이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친구 관계가 좋은 아이는 설령 성적이 우수하지 않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친구와 잘 어울리고 리드하는 리더십이야말로 미래 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사항이다. 성적이 상위권이라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타입의 아이라면 훗날 사회의 중요한 직책을 차지할 수는 있어도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리라는 보장이 없다. 대인관계에 있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협상이나 화해보다는 독선적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독단성이 개인과 사회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일으키는지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아이가 친구를 찾는 경향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조짐을 보이다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친구와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외친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자기 세계를 구축하다가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고 심하면 자기 방문을 잠그기도 한다. 좀 더 학년이 올라가면 가족 나들이도 신통치 않게 생각한다. 부모의 말은 무조건 잔소리로 듣고 우습게 여긴다. 아이들의 침묵은 무시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대체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되는 사춘기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는 시기다. 사춘기는 아이의 죽음이자 어른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곤충이라면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변태의 시기다.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유명한 <마왕>은 인간의 사춘기 과정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안은 채 말을 타고 눈보라 속을 달린다. 어린 아들은 자꾸 누군가가 부른다고 말하지만 아버지의 귀에는 세찬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무서워하는 아들을 꼭 안고 눈보라를 헤치고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아들은 죽어 있다. 마왕이 데려간 것이다. 아들의 죽음이란 은유적으로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였음을 의미한다. 죽음과도 같은 변화를 겪는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색깔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 시기의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모에게 귀속된 어린아이로만 생각한다면 <마왕>의 아버지와 같은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반항과 죽음의 시기를 피차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춘기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부모가 지나치게 명령적이고 지배적일 때 아이가 아예 집을 나가는 현상, 소위 가출이 일어난다. 가출이야말로 청소년이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 행동이다. 사춘기 시절에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친구다. 부모는 이 사실이 못마땅하다. 그동안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데,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자꾸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고 상대도 해 주지 않으니 속상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어쩌겠는가.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어미 동물은 자식이 성장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한다. 자식이 독립하도록 내몬다. 부모로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사춘기란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친구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는 것이 현명한 부모의 자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친구는 소중한 존재다. 부모의 말은 잔소리가 되지만 친구의 말 한마디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나쁜 친구, 좋은 친구란 없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이며 진실한 친구다. 서로 간에 장점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가 둘도 없는 최고 친구인 것이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여전히 엄마와 지나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채 치맛자락을 붙들고 있다면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 비켜서 있는 것이 된다. 이런 아이를 피터 팬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이는 훗날 마마보이가 될 것이다. 나이를 먹지 않는 피터 팬은 영원한 아이다. 피터 팬의 탄생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있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른이란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다.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가족도 책임져야 한다.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은 것은 어른의 책임감을 회피하고 보호받는 어린이로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1983년 미국 심리학자 댄 카일러는 몸을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어린이로 남기를 바라는 심리를 ‘피터 팬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친구가 필요한 시기지만 친구보다는 부모와 함께 지내려는 아이, 독립해야 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자녀, 대학 졸업을 기피하고 휴학하거나 전공을 바꾸는 학생들 역시 ‘피터 팬 증후군’의 모습이다.




팔 십대의 한 할머니가 역무원에게 기차표를 달라면서 “어른 하나, 아이 하나요!” 하더란다. 역무원이 살펴보니 할머니 옆에는 육 십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이 우스갯소리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은 자식이라는 뜻이다. 나이 든 자식이 부모의 주위에 맴돌 때 부모로서 처음에는 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직장도 없이 결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 의지한다면 이 또한 피터 팬 증후군이다. 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친구들과 교류하고 때가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부모 역시 자녀의 개성과 독립심, 발달 수준을 고려하여 통제와 수용의 리듬을 잘 운용해야 한다.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가 누구냐보다 친구가 누구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달라진다.(*)

keyword
이전 05화상담의 시대는 바람직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