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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봉 어머니가 전하는 교훈

에세이

by 인산

역사적으로 명필로 불리는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화는 어머니의 어떤 모습과 태도가 자식에게 교육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한석봉 어머니는 떡장수였다. 떡을 내다 팔아 살림과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너무 가난하였다. 과거나 현재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교육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이러한 부모의 희생정신과 교육 열성이 오늘날 경제 대국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면을 부정할 수 없다. 글쓰기 재주가 뛰어난 한석봉은 스님의 도움으로 10년을 약속하고 절에 들어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떡장수를 하느라 몸은 힘들었고 아들이 보고 싶었지만, 열심히 정진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면 입가에는 웃음이 나왔다. 아들이 출세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잠을 줄여가며 더욱더 부지런히 떡을 만들어 내다 팔았다. 여기까지 한석봉의 어머니는 현재의 부모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어머니도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자식의 공부를 최우선 순위에 둔다. 고3 엄마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하지 않는가.


아들의 성공을 바라며 살아가던 어머니가 시험대에 오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저 유명한 어둠 속에서 떡 썰기 일화가 그것이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홀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희생 덕택에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던 한석봉은 어떻게든지 하루빨리 공부를 끝내고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은 아들로서 당연하다. 한석봉은 절 공부 십 년을 약속했지만, 성급한 마음도 들고 어머니가 그리워 사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말이 사 년이지 어머니도 집을 떠난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러나 현명한 어머니는 사 년 공부로는 명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유학을 보냈는데 학위를 마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귀국해 버린 셈이다. 여러분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 한국의 어머니들은 당장 그 자리에서 호통쳤을 것이다. 자신의 고생하는 것이 오로지 아들을 위한 것이며, 이제 와서 글쓰기 정진을 그만둔다면 큰 인물이 될 수 없고, 그동안 고생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고 흐느껴 울었을지도 모른다. 떡을 팔러 다니면서 동네방네 엄청나게 자랑했건만 이제 와서 공부를 그만둔다면 남 보기에도 창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석봉 어머니는 이 점에 있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명한 처신을 하였다. 과연 절에서 지낸 사 년간 글솜씨가 얼마나 늘었는지 직접 테스트해 보기로 한 것이다. 말로 설명하고 따지고 논쟁하는 것보다 실기를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다. 그 결과는 변명의 여지 없이 진정으로 수긍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아들은 한밤중에 호롱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저 유명한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이 열린다.


엄밀히 말하면 이 시합은 불공평하다. 떡 썰기와 글쓰기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떡 썰기는 단순한 손기술이지만 붓글씨는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되어 작용하는 고도의 정신적 영역이다. 떡 썰기는 오랫동안 반복해서 숙달하기만 하면 아무나 잘 썰 수 있지만, 붓글씨는 무조건 오랫동안 정진한다고 해서 명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시합에서 어머니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오랫동안의 떡 썰기 경험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도 떡을 썰 수 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가지런하게 썰 수 있다. 한석봉은 어머니의 호통에 주눅이 들어 이러한 불리한 경쟁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글쓰기가 아직은 미숙하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꼼수를 미처 깨닫지 못한 덕택에 한석봉은 최고의 명필이 되는 계기가 되긴 했다.


현대의 어머니들 가운데는 한석봉 어머니 못지않은 현명한 생각과 방법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전히 그렇지 못한 어머니들도 꽤 된다. 예를 들어보자. 거실에서 아이와 함께 신나게 웃으며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가 문득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순간 함께 깔깔거리던 것을 잊어버리고 엄마는 싸늘한 시선으로 아이를 쳐다보며 호통친다.


“너 숙제했어? 안 했지. 어쩌면 숙제도 안 하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어? 얼른 가서 숙제해.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니? 난 숙제도 안 하고 텔레비전 보는 애를 이해할 수가 없어. 난 너만 할 때 숙제는 꼭 했다.” 등등.


엄마의 호통에 아이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자기 방으로 들어갈 것이지만 그때 과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도 엄마가 무서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자기는 보면서 난 못 보게 해”라고 투덜거릴 것이 분명하다. 불만이 가득 차서 방에 들어간 아이는 책상에 앉기는 하겠지만 방금 보던 화면이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므로 집중해서 숙제에 매달리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정말로 지양되어야 한다. 한석봉이 진심으로 어머니에게 졌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은 눈앞에 펼쳐진 어머니의 떡 써는 솜씨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만일 어머니가 말로만 나는 떡을 잘 썬다고 했다면 아들의 마음 깊숙이 울림을 주지도 못했고 감동적인 결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최고의 교육은 말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한때 대학에 야간반이 있었다. 야간 학생 대부분은 여성 만학도, 소위 아줌마들이었다. 이들은 성취 열이 대단히 높은 중년 여성으로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에 학교에 나오는 말 그대로 열성파들이었다. 그들은 몸은 피곤했겠지만, 배우겠다는 일념이 대단해서 졸기는커녕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그런데 아내이자 엄마이자 직장인이자 학생인 만학도의 가슴 한쪽에는 자녀에게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었다. 전적으로 아이에게 매달리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직장과 학업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히 따져보면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앞선 텔레비전의 예에서 보았듯이 말이 앞서거나 말만 늘어놓는 엄마는 아이에게 이중인격자로 보일 수 있다.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만 큰소리를 친다고 생각하면 아이는 엄마를 믿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발표 준비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텔레비전을 켤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모습,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새로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엄마의 모습이야말로 백 마디 말보다 더욱 소중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 열심히 떡을 써는 엄마가 한석봉이라는 위대한 명필을 탄생시켰던 것처럼.



심리학자 대부분은 아이의 후천적 성격 형성에 있어 제일 크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엄마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신생아와 가장 자주 그리고 제일 먼저 접촉하는 산모는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 구조상 엄마는 어린 자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눈을 맞추고 살갗을 비비며 피부와 영혼을 교감하는 대상이 바로 엄마다. 이렇게 본다면 엄마의 금기사항 일호는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니!”라는 말일 것이다. 아이는 부모를 닮지만, 특히 엄마의 영향이 크므로 화가 나서 한 엄마의 이 말은 하늘보고 침 뱉기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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