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언제부턴가 서정동산 숲에는 매미가 없어요. 전에는 참 많았는데. 지금은 매미가 하나도 없어요. 한여름이 지나고 나서 어찌 된 일인지 다 사라져 버린 거예요. 뜨거운 여름이 오면 매미들은 노래 시합을 하듯 신나게 떠들어 댔는데... 매미 소리를 들으면 왠지 더위가 좀 가시는 것 같지 않아요? 뭐라고요? 그렇긴 하지만 한꺼번에 울어 내면 시끄럽다고요? 솔직히 그렇기는 해요. 더위에 지쳐 낮잠을 자던 커다란 나무들이 매미 소리 때문에 깰 때도 있거든요. 그래도 시원한 그늘에 앉아 매미 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고향에 온 것 같아 정겨운 느낌이 들어요. 요즘은 안 그렇다고요? 아파트에서도 낮이든 밤이든 얼마든지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바로 그게 좀 문제인 거 같아요.
어느 날 처음 보는 매미가 서정동산에 나타났어요. 이 매미가 한번 울었는데 소리가 엄청난 거예요. 서정동산 숲 전체가 진동할 정도였어요.
“매, 맴, 맴, 매애앰... 맴, 맴, 맴, 매애앰...”
“매, 맴, 맴, 매애앰... 맴, 맴, 맴, 매애앰...”
모두 깜짝 놀랐죠.
“와, 이렇게 크게 우는 매미는 처음이다. 대단한 걸...”
서정동산 숲에 사는 다른 매미들은 그만 기가 질려 버렸어요. 자기들 소리는 거기에 비하면 너무 작았거든요. 서정동산 매미는,
“맴, 맴, 맴... 매앰, 매앰”
이렇게 우는데 새 매미는,
이렇게 우니 상대가 되겠어요? 서정동산의 여자 매미들은 순식간에 새 매미를 우러러보게 되었어요.
“어머머! 저 우렁찬 소리 좀 봐. 너무 멋지다. 친구가 됐으면...”
그런데 새 매미는 이상하게 밤에도 울었어요. 한낮의 햇빛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다 보면 누구나 피곤하죠. 저녁이 되어 다들 쉬고 싶은데 갑자기 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대면 모두 깜짝 놀라겠죠? 나무들이 투덜거렸어요. 귀도 아프고 잠을 깊게 잘 수 없었거든요. 한 번은 할아버지 나무가 새 매미에게 말했어요.
“좀 조용히 울면 안 되겠나? 밤에는 안 울면 좋겠는데.”
“죄송합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제 맘대로 안 돼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매미는 말없이 저 너머 밝게 빛나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바라봤어요.
“이제 습관이 되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할아버지 나무도 도리가 없어요. 습관이 되어버렸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습관은 무서운 거예요. 한번 습관이 들면 바꾸기가 힘들거든요.
“자네 어디서 왔나?” 나무 할아버지가 물었어요.
“저 언덕 넘어 아파트 단지에 살았어요. 그곳은 참 이상한 곳이에요.” 새 매미가 대답했어요.
“뭐가?”
“왼 종일 시끄럽고요, 낮도 밤도 없어요... 언제나 환해요. 여기 하고는 너무 달라요.”
다음 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새 매미는 서정동산을 압도했어요. 여자 매미들은 다른 매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새 매미 하고만 놀았어요. 쉬지도 않고 엄청난 소리로 울어대는 새 매미가 서정동산의 왕 매미가 되어버렸어요.
한 젊은 매미가 있었어요. 막 유충에서 깨어난 매미였어요. 도시에서 온 매미가 너무나 부러웠어요. 소리도 크고 여자 친구도 많으니 얼마나 부럽겠어요. 젊은 매미는 새 매미에게 말했어요.
“저 좀 가르쳐 주세요.”
“무얼?” 새 매미가 물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크게 울 수 있는지, 밤에도 울 수 있는지...”
“별로 배울 게 못돼.”
새 매미는 씁쓸하게 웃었어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가르쳐만 주시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해 낼 자신 있어요.” 젊은 매미가 사정했어요.
“배울 필요 없다니까.”
“제발...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왜 그토록 어둡고 칙칙한 땅속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야 하는지... 그리고 밝은 세상에서 겨우 일주일 밖에 살 수 없는지... 전 17년이나 땅속에 있었다고요.”
젊은 매미는 가슴을 치며 소리쳤어요.
“이 세상에서 불과 일주일인데. 그 큰 소리로 밤에도 울고 싶어요. 그렇게 실컷 울어댈 수 있다면 일주일이 짧지 않을 거예요.”
새 매미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젊은 매미가 너무 졸라대는 바람에 결국 한마디 했어요.
“저기 아파트 단지 보이지? 밤에도 환하잖아. 저기 가 봐.”
“아파트요? 그래서요?” 젊은 매미가 물었어요.
“그래서?” 새 매미가 다시 물었어요.
“예, 저기에 가서 다음에는 뭘 해요?”
새 매미는 힘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어요.
“그냥 가 보면 알아. 할 일은 별로 없어.”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젊은 매미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인사를 하고 그곳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어요. 그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새 매미는 씁쓸하게 웃었어요.
이제 시간이 되었어요.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새 매미는 마지막으로 커다랗게 울고는 숨을 거두었어요.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었어요. 새 매미랑 함께 있었던 여자 매미들이 알을 낳지 못하는 거예요.
“참 이상하네. 알을 낳을 때가 됐는데.”
다들 걱정이 많았어요. 한데 모여 한숨을 쉬고 있었죠. 바로 그때 파드득 소리가 나더니 아파트 단지로 갔던 젊은 매미가 하늘에서 툭 떨어졌어요. 입에서 피를 토하고 기진맥진해서 곧 죽을 것 같았어요. 모든 매미가 젊은 매미 곁으로 모여들었어요.
“어떻게 된 거야?”
“이것 봐. 입에서 피가 난다.”
“이 봐 젊은 매미, 정신 차려...”
얼마 지나자 젊은 매미는 정신을 차렸어요. 다들 무슨 일인지 궁금했어요.
“어떻게 된 거야?”
한 매미가 물었어요. 젊은 매미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죽어가는 소리로 말했어요.
“저곳으로 날아갔어요. 새 매미가 가르쳐 준 곳으로요.”
숲 속의 나무, 바람, 꽃잎, 벌레들이 모두 귀를 기울였어요. 참으로 고요했어요. 잎사귀 사이로 듬성듬성 햇볕이 스며드는 숲 속의 고요함, 그 속에서 들릴락 말락 한 젊은 매미의 소리. 이것이 바로 이 순간 서정동산의 풍경이었어요.
“저곳은 지옥이에요.”
“뭐라고?”
모두 놀라서 얼른 입을 가렸어요.
“왜? 자네 가고 싶어 했잖아.”
할아버지 나무가 말했어요.
“저곳은 온통 공해뿐이에요. 소음 공해, 빛 공해...”
“그래? 공해뿐이야?”
“우리 매미는 울어야 짝짓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자동차 소리, 공사하는 소리가 너무 엄청나서 매미 소리는 들리지도 않아요. 어떻게든 들리게 하려고 악을 쓰다 보니 그만 목이 상했는지... 피가 났어요.”
“쯧쯧쯧... 그랬군.”
“쉬려고 해도 쉴 수가 없어요. 밤에도 대낮처럼 환해요. 낮과 밤을 구분할 수도 없고... 밤에도 눈이 부셔서 잠을 잘 수 없어요.”
“지옥이 따로 없군.”
“더 무서운 건, 물과 공기도 오염 돼서... 아무리 짝짓기를 해도 알을 낳지 못해요.”
“아...”
여자 매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요. 자기들이 왜 알을 못 낳는지 이유를 알았거든요.
“제가 미련했어요. 그걸 깨닫는 순간 서정동산 숲이 너무 그리워 이렇게 달려왔지만... 이젠 늦었어요.”
젊은 매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숲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그때 숲 속 바람이 젊은 매미를 살포시 흔들어 주었어요. 힘든 삶을 마감하는 젊은 매미가 안쓰러웠던 거예요. 젊은 매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흘렀어요. 그리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그 여름이 지나고 서정동산에서 매미가 사라졌어요. 사라졌다기보다 아기매미들이 태어나지 못한 거예요. 대를 잇지 못하는 건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그다음부터 서정동산 식구들은 오염이란 말을 제일 무서워하게 되었어요. 호랑이가 곶감을 무서워하듯 말이죠. 오염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냐고요? 글쎄... 아마 사라진다는 뜻이 아닐까요. 언제라도 서정동산에 갈 일이 있을 때 장난 삼아 오염하고 외쳐 봐요. 모두들 깜짝깜짝 놀라는 광경을 보게 될 테니까요. 매미 없는 서정동산의 여름은 쓸쓸하고 허전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