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파란 하늘이에요. 하얀 뭉게구름이 하늘하늘 퍼지며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요. 한낮의 햇빛을 받으며 땅 위 모든 것들이 열심히 일해요. 물가의 조약돌도, 잔디 속 풍뎅이도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여요. 눈은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아요. 푸른 숲 너머로 아지랑이가 머리카락 풀린 듯 가물가물 피어올라요.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던 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겠지?”
눈은 기분이 좋으면 늘 하던 대로 서너 번 깜빡거렸어요.
눈 아래 잠자코 있던 코가 얼른 눈의 생각을 알아차렸어요. 코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해.”
“뭐?”
느긋했던 눈은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져 눈꼬리를 치켜세웠어요.
“틀린 말이라고? 뭐가? 내가 아니면 이런 오붓한 풍경을 볼 수 있겠어? 난 눈이라고. 뭔가를 보는 눈... 안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 뭐?”
눈은 막 화가 났어요. 코가 괜히 시비를 거는 것 같았죠. 코가 말하는 걸 싹둑 잘라 버렸어요.
“하지만 뭐? 말해 봐.”
“하지만 보는 게 전부는 아니거든. 네가 풍경을 여유 있게 보고 있지만... 소리들, 냄새들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을 만드는 게 아닐까? 안 그래 귀야?”
코는 귀에게 동의를 구했어요.
“무슨 말이야?”
눈이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어요.
“저 매미 소리 들리지?”
“그래 들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포플러 잎사귀 소리는?”
“그것도 물론 들리지. 풋!”
눈은 갑자기 웃음이 났어요. 지금 따사로운 풍경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매미며 바람을 얘기하는 것이 엉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소리들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모습을 만드는 거야. 물론 나도 한몫하지. 냄새로 말이야.”
눈은 코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어요. 파란 하늘과 잔디,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들, 그들 사이로 흐르는 도랑,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있는데 코가 귀를 데리고 끼어들려고 하니 웃음이 나왔어요. 코가 말했어요.
“그럼 감아 봐.”
“뭐?”
“감아 보라고.”
눈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자기 능력을 확실히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눈은 코가 시키는 대로 감았어요. 푸르고 하얗던 것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어두워졌어요. 어둠 속에서 눈은 생각했어요.
“보이지 않으면 너희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어? 두고 보라지. 금방 후회하게 될걸?”
눈은 이번에 확실하게 콧대를 꺾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조금 흘렀어요. 눈은 갑갑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귀와 코로 주의가 가는 것을 느꼈어요.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 바람이 살랑거리며 살짝 스쳐 지나갔어요. 향기가 코로 전해졌고 바람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어요. 눈은 당황하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한 번도 바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사실은 바람이 싣고 온 향기를 본 적도 없어요. 코가 말했어요.
“어때?”
“뭐, 뭐가?”
“코와 귀를 통해 풍경이 느껴지지 않니?”
“아니, 글쎄, 잘 모르겠어.”
귀가 쫑긋거리며 하품하듯 살짝 움직였어요. 그러자 매미 소리, 벌이 윙윙대는 소리, 잔디 속 벌레들이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어요. 눈은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어요. 매미 소리가 들리면 숲 속 어딘가에 매미가 있으려니 생각은 했지만. 리듬에 맞춰 한꺼번에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느껴 보기는 처음이에요. 잔디가 그저 파랗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지, 그 속에 벌레들 세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눈을 감으니 바람이며 향기며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어요.
“이제 떠 봐.”
눈은 부끄러워졌어요. 눈은 얼른 뜨지 못하고 눈알을 살짝 굴리다가 실눈을 떴어요. 갑자기 밝은 빛이 눈으로 쏟아졌어요. 눈이 부셔 살짝 찌푸리자, 콧등에 잔주름이 생기고 귓바퀴가 위로 올라갔어요. 눈은 깨달았어요. 우리는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귀가 말했어요.
“우린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고 녹은 물이 재잘대기 시작하면, 아! 봄이 왔구나 생각해. 빈 가지에 눈이 쌓이는 소리는 겨울 소리고. 추수하는 소리는 가을 소리, 땀 닦는 소리는 여름 소리야. 그것뿐인 줄 아니? 진달래 개나리 향기는 삼월 향기, 아카시아 향기는 오월 향기, 짚단 타는 냄새는 가을 냄새, 화롯불 냄새는 겨울 냄새. 아! 그렇지, 군고구마 냄새도 겨울 냄새야.”
눈은 부끄러웠어요. 눈은 수줍게 눈웃음치며 저 멀리 들판을 지나는 기차를 바라보았어요. 기차 소리가 유난히 우렁차게 들렸어요.
밤이 되었어요. 모두 나른한 시간이에요. 다들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그때 갑자기 입이 크게 벌어지는 바람에 얼굴 근육이 심하게 당겨졌어요. 그러자 눈에서 눈물이 나왔고, 콧구멍이 크게 벌어졌고, 귀가 뒤로 젖혀졌어요. 벌어진 입 사이로 심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흘러 들어왔어요.
“벌컥 벌컥 벌컥 벌컥...”
목구멍에서 큰 소리가 났어요. 입은 쉬지 않고 벌렸다 오므렸다 했기 때문에 눈, 귀, 코는 마구 흔들리며 멀미가 났어요. 점점 밤이 깊어 갔지만 입은 멈출 줄을 몰랐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눈은 초점이 흐려졌고 귀와 코는 빨개졌어요.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이거 큰일이네. 어쩌지?,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눈과 귀와 코는 서로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어요.
“저 입을 멈추게 할 순 없을까?”
빨갛게 충혈된 눈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코는 역겨운 냄새 때문에 정신을 잃을 뻔했고 귀에서는 심한 소리가 났어요. 그들은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 입이 커다란 소리로 욕을 해대기 시작했어요. 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어요. 눈과 코와 귀가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때를 말이에요. 하지만 먹고 마시면서 떠들어 대는 입이 한순간 모든 것을 무너뜨린 거예요. 눈은 귀와 코를 불렀어요.
“얘들아! 우리 합심해서 입을 막아 보자.”
“그래 그렇게 하자.”
귀와 코도 동의했어요. 그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입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입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씹어대며 끊임없이 말했어요. 침도 튀고 음식도 튀었어요. 눈, 코, 귀는 너무 창피해서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요. 입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는 가만히 귀 기울였어요. 입은 음식을 마구마구 삼키면서 남을 욕하거나 자기 자랑을 했어요.
“아! 귀를 막고 싶어. 자기 잘못은 모른 체하고 남 잘못만 들추다니. 우리가 한 식구라는 것이 정말 창피해. 얘들아 이젠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눈과 코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들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자신들 일을 포기하는 것이에요. 눈은 보지 않으려고 감아 버렸고, 코는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최대한 숨을 멈췄으며, 귀는 듣지 않으려고 닫아 버렸어요. 어둠 속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어요. 그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어둠 저편으로 날아갔어요.
땅! 땅! 땅!
맑고 깨끗한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자 귀가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귀는 조심스럽게 눈과 코를 깨웠어요.
“얘들아! 일어나. 정신 차려.”
“음, 아휴. 여기가 어디지?”
“쉿! 조용.”
여긴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이에요. 하늘나란가? 지옥인가? 눈은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고, 코는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으며, 아직도 멍한 귀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어요.
“입을 깨워라.”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어요.
“예?”
셋은 동시에 대답했어요.
“헤 벌린 체 침을 흘리며 자고 있는 입을 깨우란 말이다.”
거역할 수 없는 강한 힘에 그들은 입을 툭 쳤어요.
“야, 빨리 일어나!”
“아... 음!”
상황 파악을 못한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동시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아! 아파.”
코가 나지막이 짜증을 냈어요.
“입... 일어나.”
“어... 왜요?”
입이 씰룩거리며 투덜댔어요.
“모두 잘 듣고 대답하거라. 눈!”
“예.”
“넌 몇 개냐?”
“예?”
“눈이 몇 개냐고?”
“아, 예... 두 갭니다.”
“코는 구멍이 몇 개지?”
“저도 두 개요.”
“귀는?”
“두 개요.”
“그래. 다들 두 개구나. 입.”
“예.”
“넌 몇 개냐?”
“두 개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입은 아무 생각 없이 눈, 코, 귀가 하는 대로 대답했어요.
“흐음... 두 개라. 입!”
“예.”
“입이 하는 일이 뭐지?”
“먹고 말을 합니다.”
“그럼 먹는 곳과 말하는 곳이 다른가?”
“예?”
입은 무슨 영문인가 하고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어요.
“두 개라며...”
“...”
입은 그만 입을 꼭 다물고 말았어요.
“너희 조상에 대해 말해 주지. 원래 입도 눈이나 귀나 콧구멍처럼 두 개였다. 하나는 먹는 일을 하고 다른 하나는 말하는 일을 했지. 하지만 욕심이 너무 많아지고 건방져서 하나로 줄여 버렸다.”
눈, 귀, 코, 입은 깜짝 놀랐어요.
“원래 입이 두 개였다고?”
모두 두 개의 입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지만 괴물 같은 모습만 보일 뿐이에요.
“눈은 두 개인데 보는 일 하나만 하고, 코도 구멍이 두 개인데 냄새 맡은 일 하나만 하고, 귀도 두 개인데 듣는 일 하나만 하잖아. 헌데 입은 하나인데 먹기도 하고 말도 한단 말이지.”
눈은 껌뻑 껌뻑거리고, 코는 벌름거리고, 귀는 쫑긋하게 섰어요. 잘 보기 위해, 냄새를 잘 맡기 위해, 잘 듣기 위해 집중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에요.
“귀는 들으라고 있는 것이고 입은 들은 다음 말하라는 것인데. 귀는 두 개고 입은 하나라... 그렇다면 두 배로 듣고 절반만 말하라는 뜻 아니겠어? 그런데도 듣지 않고 말만 하다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어요. 입은 창피해서 입술을 깨물었어요.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하나마저도 없애 버릴 거야.”
“아!”
모두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어요.
“입을 없애면 어떻게 되지? 입이 없으면 먹을 수 없고, 먹지 못하면 눈이나 귀나 코나 다 쓸모없게 되는데...”
그때 더욱 우렁찬 소리가 들렸어요.
“바로 그거야. 입을 혼내 주고 싶다만 너희를 봐서 이번에 특별히 용서하겠다. 너희들이 입을 잘 돌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그리고 너무 입을 미워하지 마라. 그래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야.”
“예!”
모두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훈계를 다 듣고 나자 입은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입속에는 아직도 텁텁한 냄새가 났지만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어요.
“앞으로는 두 배로 보고, 두 배로 냄새 맡고, 두 배로 듣고 말은 반으로 줄여야지.”
반성을 하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생겨났어요. 양 입술이 살짝 위로 치켜졌고 덩달아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되었고 콧구멍이 커졌으며 두 귀가 위로 솟았어요.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미소 짓는 얼굴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워요. 얼굴을 꾸미는 눈, 코, 귀 그리고 입이 만들어 낸 예쁜 미소가 무지개처럼 세상을 밝고 환하게 해 주었어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