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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유목민, 그들은 누구인가?

에세이

by 인산

한반도에 유입되어 정착된 삶을 살기 전 한국인의 조상은 유목민이었다. 아기 엉덩이에 물든 파란 몽고반점은 유목의 피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그들은 긴 유랑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서게 되었고 정착지를 마련하여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유목의 기질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유목민이자 기마족의 후예인 한민족의 피에는 여전히 유목을 위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다. 21세기의 글로벌 시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인은 조상이 지녔던 유목의 특징을 다시금 활기차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21세기에 들어 새롭게 대두된 유목 현상, 즉 노마디즘은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일자리를 찾거나 학문적·정치적 이유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신 유목민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한때 일자리를 찾아 북미며 유럽이며 선진국으로 떠났던 한국인은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맞이하는 위치가 되었다. 떠나고 돌아오고 유입되는 시대, 다문화가정이 점점 늘면서 새 시대 새로운 노매드(nomad, 유목민)가 양산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노마디즘은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인류의 조상은 수렵 생활을 했으므로 인간은 애초부터 유목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렵이란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르는 육식동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시 상태의 인간은 굶지 않기 위해 식량이 될 만한 동물들의 이동을 따라 언제든지 길을 떠나야 했다. 길을 떠남, 이는 곧 노마디즘이다. 이 유목 정신은 새로운 유목의 시대를 맞이하여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준다.

정보의 중요성


유목의 삶에서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보의 중요성이다. 떠남과 정착이라는 생의 리듬 속에서 중요하게 떠오르는 낱말이 다름 아닌 정보다. IT산업이 폭발적이었던 20세기말 샛별처럼 떠오르는 아이콘이었던 정보는 사실은 노마디즘의 산물이다. 현재 개인마다 지참한 휴대폰과 노트북, 인터넷 관련 기기들을 통해 시간이나 장소와 상관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는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정보의 중요성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몽둥이를 들고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원시의 유목민에게도 가장 필요했던 것이 이 정보였다. 풍부한 물과 목초지가 어디에 있으며 그곳을 찾는 초식동물은 어떤 동물이고 얼마나 많은지, 위험한 동물은 어디에 있는지 상호 간에 정보를 교환해야 했다. 정보가 넉넉한 종족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정보가 부족한 종족은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보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도 전쟁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일컫는 것이고 “아는 것은 힘이다”도 지식 정보가 곧 파워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사전답사를 하는 것은 정보가 축적되었을 때 유목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하는 행동이다.


신 유목의 글로벌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정보가 활발하게 교환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사회가 선진사회다. 이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열린 정보교환을 위해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며, 대립이 아닌 조화를 근간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정보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은 신 노마디즘의 중심에 서 있다. 따라서 좀 더 개방적이고 더 정확하고 더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한국은 21세기형의 진정한 선진 국가가 될 수 있다.


공정한 분배와 역할 분담


유목은 축적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언제든지 떠나야 하는 유목민은 가능한 짐을 가볍게 해야 하며, 그날그날 먹을거리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축적할 만한 개인의 소유물도 많지 않거니와 혹시 그런 것들이 있다면 공평하게 나누었다. 목숨을 건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애이므로 상호 간의 진정한 소통과 믿음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유목 생활은 성별과 나이에 따른 정확한 역할 분담으로 이루어진다. 역할 분담이 애매하거나 공정하지 못하면 험난한 유목의 삶에서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 공정한 분배와 정확한 역할 분담은 원시인의 몸에 밴 일반적인 생활 태도였다. 가진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하게 분배하기, 나이와 성별에 따라 정확하고 평등하게 역할을 분담하기, 이것이 노매드의 특징이다. 공정한 분배와 평등한 역할 담당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대접을 받는 사회, 공정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는 밝은 미래를 약속한다.


신유목 시대에 여성의 역할


수렵에서 농사로의 전환은 유목 삶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농사는 여자들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사자 무리와는 달리 원시인의 사냥은 남자 몫이었다. 남자들이 밖으로 나가면 여자들은 남자들이 먹을거리를 들고 귀가하는 것을 기다리며, 집안 살림을 하거나 아이들을 돌봤다. 그러나 남자들이 항상 사냥에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거니와 어떤 때는 아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남자들이 빈손으로 돌아오거나 소식이 없을 때면 여자와 아이들은 하염없이 기다리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명이란 끈질긴 것이다. 여자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집 근처를 돌아다녔다. 여자들은 들판이나 야산에서 풀을 뜯고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캐어 목숨을 부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사냥에 성공한 남자들이 고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집안의 여자와 아이들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천만에 여자와 아이들은 풀과 열매와 뿌리를 씹으며 여전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들판에서도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자들은 점차 풀과 열매와 뿌리를 가져다가 정착지 근처에 심었다. 이렇게 해서 농경문화가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여자의 지위가 상승했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여자들 덕택에 농사를 짓게 되면서 유목이라는 근원적인 본성이 뒤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사회구조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안정적인 먹을거리를 확보하게 되면서 인구가 증가했고 개인 소유물도 늘어났으며 부에 따른 계급이 생겨났다.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이상 세계는 공정한 생산과 공정한 분배가 가능했던 농사 이전의 수렵시대로의 회귀다. 그러나 개인적인 부의 축적과 권력이라는 달콤함을 맛본 지배층에 원시시대의 공정한 분배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갈수록 정교한 규칙과 질서가 생겨났고 명령과 복종의 상하관계가 확립될수록 유목의 본성은 저 멀리 밀려났다.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되면서 인간의 유목 본성은 제어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졌다.


그러나 독수리 같은 맑은 눈으로 드넓은 광야를 쳐다보며 언제든 유목을 꿈꾸는 인간의 원형적인 소망은 다른 방식으로 유목을 표출하도록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술이다. 방랑하는 유랑 시인은 유목민의 후예다운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예술가이다. 김삿갓의 방랑 역시 유목민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노래하며 떠도는 음유 시인은 유목형 인간이며, 유랑 극단 역시 방랑하는 유목인의 형태다. 공연을 하기 위해 짐을 풀었던 유랑극단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들이 이동하는 대열은, 풀을 뜯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초원을 이동하는 장엄한 누와 얼룩말 무리와 흡사하다.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떠난다. 악어들이 득실대는 강을 건너 생을 보장해 줄 미지의 곳으로 향한다. 그들의 거대한 이동은 자체적으로 장관이자 생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달리는 동물들, 그들은 움직이는 생명체인 유목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풍요로운 목초지를 찾아 나선 동물들은 유목의 전형이다. 누 떼가 이동하면 덩달아 육식동물들도 이동한다. 예전에는 인간들도 이들과 함께 이동했을 것이다.


비록 문명화되고 현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감각에는 여전히 유목 정신이 남아있다. 이를테면 숯불구이가 프라이팬 구이보다 더욱 맛있게 느껴지고, 추운 겨울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 소위 가을을 타는 것도 유목의 잔재다. 숯불구이가 맛있는 것은 원시의 사냥터에서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노획물을 구워 먹던 미각의 기억 때문이며, 가을을 타는 것은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불안해하던 유목민의 심정이 반영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를 비교하면 남자가 유목의 성향이 좀 더 짙다. 수렵시대 사냥을 떠나는 남자의 모습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남는다. 여자는 남자를 배웅하고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이것이 보편적인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백제의 노래 <정읍사>는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는 노래다.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기는커녕 달을 바라보며 편안하기를 기원한다. 가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노랫말도 남자의 유목적 성향을 표현한다. 떠나는 남자와 배웅하는 여자의 모습은 인간사에서 오랫동안 전형적인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여성성은 유목에 반하는 것인가. 사실 원시의 유목은 그랬다. 생물학적으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담당하는 여자는 자유롭게 떠날 수가 없었다. 항상 무거운 짐이 들려있었고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디지털 유목 시대의 여자는 전혀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는 여자의 시대라고 한다. 피임약의 발명과 저출산으로 여성은 임신, 출산, 육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21세기는 여성적 감성이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 (John Naisbitt)는 저서 <메가 트렌드>(Megatrends)에서 21세기는 여자(female) 파워, 감성(feeling), 상상력(fiction)의 3F의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에 비해 감성과 상상력에 뛰어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여자가 신 유목민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디지털 유목민


인터넷 세상인 현대는 디지털 유목민의 시대다. 디지털 유목민이 생겨나면서 여자든 남자든 성을 구분하지 않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가상공간이 마련되었다. 교통수단과 도로가 발달하고 엄청나게 빠른 인터넷 세상에 사는 현대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유랑하는 유목민이다. 온라인상에서 결코 한 곳에 거주하지 않는 그들은 하룻밤에도 바다보다도 광활한 사이트를 항해한다. 그들은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 속을 헤집고 달린다. 마우스를 잡은 그들의 상상은 드넓은 목초지를 그리고 있다. 디지털 유목민은 어두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방랑인 행세를 한다.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그들은 붉게 충혈된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는다. 미지의 곳을 개척한 유목민은 밝은 낮에는 잠시 현실에 머물지만 어둠이 찾아오면 또다시 미지의 곳을 향해 날갯짓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공간을 경험하며 낯선 시간을 헤맨다. 진정 그들이야말로 유목민의 후예가 아닌가.


오프라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과거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입학원서를 두 번 정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고교 졸업예정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9회 정도 원서를 낼 수 있다. 그들은 소위 여러 개의 대학 문을 두드리는 유목민인 것이다. 그뿐인가. 텔레비전 채널은 얼마나 다양해졌는가! 과거의 두세 개의 채널에서 이제는 백 개가 넘는 채널을 수시로 돌아다니는 시청자는 진정 유목민의 후손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농경시대 한 곳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광고가 나오면 언제든지 그 채널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학업과 직장 등을 이유로 현대인은 유랑 극단의 단원처럼 전국을 유랑한다. 정부는 유목민을 위해 매일 길을 닦고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철로 노선을 확장하여, 더욱 빠르게 하려고 주력한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고 외쳐대면서 거리를 좁히는 노력은 현대 유목민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신 유목민은 국경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엄마 젖을 떼면서 유아원을 경험한 신 유목민은 사춘기가 채 되기도 전에 조기유학이라는 핑계로 먼 길을 떠난다. 해외파들이 찾는 공항은 나날이 커지고 항공기의 성능은 엄청나게 발달한다. 글로벌 시대, 세계화라는 것은 결국 유목민의 시대, 유목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는 전적으로 새롭게 나타난 개념이 아니다. 현대인에게 있어 유목은 새롭게 정립된 것이라기보다도 원시적 속성을 되찾은 것일 뿐이다. 다만 아날로그 유목에서 디지털 유목으로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힘겹게 두 다리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던 원시의 노매드는 이제 손가락이나 최첨단 교통수단을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유목인으로 전환되었다.


유목민이 향하는 곳


일탈은 때때로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여행은 생활의 활력소이며 충전의 기회다. 여름철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유목의 흔적이다. 사람들은 사회의 제도나 관습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허용되며 모든 것이 가능한 축제의 장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축제에서 일탈을 꿈꾸며 관습에 얽매였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기차가 철로를 탈선하면 사고가 나지만 언제나 주어진 길을 달린다면 그 또한 재미가 없다. 삶은 재미와 신명과 활력이 있어야 한다. 무미건조한 삶은 의미가 없다. 노매드는 일상에서 탈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유목의 한 형태다. 영화나 연극 속에서, 미술이나 음악을 통해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것 역시 유목의 정신이다. 매일의 일상이지만 갑자기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그 역시 유목의 흔적이며, 다른 세계로 떠나서 그곳을 발견하기, 새롭게 느끼기 등도 일종의 유목이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오늘 처음으로 길가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면 유목을 경험한 것이 된다.


항상 어디론가 떠나려고 드는 유목인은 다음의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과연 어디로 떠날 것인가? 떠나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유목인에게 과연 최종 목적지가 있을까?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목민에게 있어 안착의 장소는 없다. 풀을 뜯고 나면 새로운 목초지로 이동해야 하는 누 떼처럼 유목인 역시 그 목적지를 알 수 없다. 다만 푸른 목초지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그곳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이다. 5일 장을 찾아 달빛을 받으며 노새를 몰던 장돌뱅이처럼 유목인에겐 다음의 목적지만 있을 뿐 최종 목적지는 없다.


머물 장소가 없다는 것, 안착의 장소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음을 뜻한다. 머물지 않음은 물의 흐름을 따라 몸을 맡긴 채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낙엽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박차고 거슬러 오르는 송사리의 몸짓이다. 힘겹지만 거스르는 송사리의 반항적 움직임은 반역이다. 송사리는 왜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가? 유목이 그렇듯 이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유목, 거스름, 반역은 삶의 생동력의 원천이라는 점이다. 강한 생명력이 있음을 증거 하는 행위, 그것이 곧 유목의 떠남이자 누의 대이동이자 송사리의 반역이다. 살아있다면 떠나야 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며 생명체이다. 떠나지 않고 정해진 장소에 머물고자 한다면 죽음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죽음이 유목인의 최종 목적지일 수 있다. 인간이 죽었을 때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의미가 있다. 경작된 땅이 유목을 잠시 접게 했던 것처럼 땅은 머무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초원에서 유목민은 막집을 지었다가 부수고 지었다가 부스면서 양 떼를 몰고 길을 떠난다. 그들 역시 아프리카의 누처럼 풀을 따라 이동하면서 기약 없이 떠나지만, 그러나 풀이 자라면 언젠가는 되돌아올 것이다. 하기야 한 곳에 정착할 것도 아닌데, 되돌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향의 개념도 점차 약화되는 현대는 유목을 요구하는 시대다. 떠남을 머뭇거리면서도 언제든지 떠나려고 하는 유목의 속성은 현대인의 디지털 삶과 기묘하게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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