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자신을 사랑할 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기 존중감이 생긴다는 점에서 자기 사랑,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삶에서 꼭 필요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불행히도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부정적인 말들은 우리를 위축되게 한다.
“넌 어째서 그러니?” “왜 그 모양이야?” “공부 좀 해라.”
짜증 섞인 어른의 말뿐 아니라, “누구는 잘하는데 넌 왜 그래?” 같은 비교의 말도 자신감을 잃게 한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깊이 받는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그 말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특히 칭찬보다 꾸지람을 더 많이 듣다 보면,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어떤 일을 하기 전부터 지레 실패할 거라고 단정 짓게 된다. 이런 반복 속에서 자신에 대해 점차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피아노 소녀 이야기
피아노 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다. 건반 앞에 앉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주에 몰입했다. 어느덧 그녀는 피아노 신동으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연주차 그곳을 방문했다. 사람들의 주선으로 소녀는 그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고 그녀는 숨을 죽인 채 피아니스트의 평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차갑고 단호했다.
“형편없네요.”
그 한마디에 소녀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크게 상처받은 그녀는 피아노 앞에 다시는 앉지 않았다. 좋아하던 연주가 미워졌고, 피아노는 그대로 닫힌 채 세월 속에 묻혔다.
세월이 흘러, 평범한 어른이 된 그녀는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연주회를 알리는 팸플릿을 보게 되었고, 거기엔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로 그 피아니스트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를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린 인생
연주회가 끝난 후, 그녀는 대기실을 찾아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혹시 저를 기억하세요?”
“글쎄요. 누구시죠?”
“어릴 적에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어요. 사람들도 잘한다고 칭찬해 줬고요. 그런데 당신이 형편없다고 말한 이후론 피아노를 전혀 치지 않았어요. 그때 당신이 조금만 따뜻한 말을 해 주었더라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저는 오랫동안 당신을 원망했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피아니스트가 말했다.
“그렇군요. 사실 나는 모든 피아노 지망생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그 비판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라야 위대한 연주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내 말에 상처받고 그만두었다면, 글쎄요, 자질이 없었다고 볼 수 있겠죠.”
자기 존중감은 자기 사랑이다
이 일화는 결국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군가의 평가에 흔들리는 대신, 자신의 열정과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자기 내면에서 오는 확신이 우리의 가치를 높여준다.
그 소녀가 만약 자기 존중감이 높았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노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실력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말에도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연습했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태어남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이를 믿는 힘이 자기 존중감이며, 자기 존중감은 결국 자기 사랑으로 연결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견디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근본적인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