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집회"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아이돌을 향한 "응원봉"과 정치에 대한 견해를 나타내는 "집회"의 신선한 조합.
뉴스를 보면 집회에서 형형색색 흔들리는 아이돌 응원봉을 볼 수 있다.
응원봉을 흔든다면 대부분 10대일 텐데, 왜 이 아이들은 지금 정치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걸까?
투표권도, 투표 경험도 없는 아이들이 정치와 친해질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책'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떠한 정책이 나올 때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정책들이 국민들의 의견에 따라 변동이 생기는 때가 있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정책은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변동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때문에 아이들, 특히 10대의 입장에서 정책은 '통보'와도 같다. 자신이 참여할 수 없는 영역, 따라야만 하는 어른들의 말이다.
하지만 이번 계엄령 선포는 아이들의 '미래'와 맞닿아 있었다. 가만히 따른다면 자신들이 꿈꾸던 미래가 사라질 위기였던 것이다.
12월 초는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시기였고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는 시기였다. 자신의 꿈을 위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꾹 참고 미루는 시기였다는 의미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계엄령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이제 꿈꾸던 20대가 된 아이들에게, 대학 원서접수를 하려는 아이들에게, 시험 끝나고 후련하게 놀 기대를 하는 아이들에게 "내 미래가 없어질 뻔한" 날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를 직접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시험 기간임에도 학원이 끝나고 부리나케 집회에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불안으로 잠을 못 자느니 집회에 들렀다 가는 것이 맘이 편하다고 했다. 길바닥에 앉아 숙제를 해왔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놀러 나간 것이 아니다. 아무리 평화롭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집회는 위험하고 불확실하고 무서운 곳이다.
그곳에 그나마 친숙하고 마음을 기댈만한 '응원봉'을 가지고 간 것은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고, 아이들만의 용기를 내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