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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이제 더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불안한 성장의 기록

by 찌니

'정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깊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검열했다.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방향이 없는 느낌.
막연한 초조함만 남은 채,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누구는 뭔가를 배우고, 누구는 이직하고,
누구는 더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만 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멈췄다.
‘그래서 나는 뭘 하고 싶은데?’

다시 돌아보니,
어설프게 끊어졌던 데이터 공부가 자꾸 눈에 밟혔다.
언젠가 시작했지만 흐지부지 놓아버렸던,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 마음이 가던 그 분야.


도망치듯 외면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다.
이번엔 진짜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동안은 선택을 하면서도 늘 ‘이게 맞나?’를 붙들었는데


지금은 ‘이게 맞다’라는 감각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확신은 그렇게 생겼다.


극적인 계기도, 누군가의 조언도 없이.
그저 멈춰 있는 시간이 충분히 길었기에,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느껴졌기에.


그래서 다시 루틴을 만들었다.

SQL 책을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고,
지난번에 엉성하게 끝났던 분석 프로젝트를 열어보았다.
예전에는 ‘빨리 뭘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이 앞섰다면,
지금은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노션에 공부 기록을 정리하고,
작은 성과에도 체크 표시를 남긴다.
하루에 한 시간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사람이
이제는 책상 앞에 앉아 코드를 정리하고,
데이터를 보고 맥락을 상상한다.


아직 서툴지만,
이게 나와 맞는 흐름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제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건 거창한 다짐이라기보다,
더는 이전처럼 망설이고 흔들리는 나로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중간에 또 멈출 수도 있다.
길이 엉켜도, 의심이 올라와도 괜찮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 확신만큼은,
잊지 않기로 했다.


불안했던 시간도 결국은,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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