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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나를 쉬게 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순간

by 찌니

day 1 — 천천히 걷고, 많이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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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떠나는 여행이었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어디에 가고, 뭘 먹을지는 그날의 기분에 맡기기로 했다.


하카타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우리가 묵을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는데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작고 조용한 공간, 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창문.
머무는 공간이 좋다는 건, 그 여행 전체가 부드럽게 흘러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괜히 “잘 잡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됐다.


짐을 맡기고 우리는 텐진역 쪽으로 걸었다.
지하철을 타면 금방일 거리지만, 굳이 걷기로 했다.
적당한 바람과 조용한 거리,
그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근처의 일본 체인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값은 저렴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편안했다.
어떤 날은 그런 가볍고 소박한 시작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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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와 동네를 걷다가,
블로그에서 봤던 강 근처 카페, ‘토퍼커피’가 떠올라 그쪽으로 향했다.
도시의 풍경을 따라 천천히 걸었고, 그렇게 도착한 카페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친구는 소이라떼를 시켰는데
친구는 한 모금 마시고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 이거 진짜 별로야.”
결국 내 커피를 반 넘게 나눠 마셨고,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웃겨서 한참을 수다 떨며 깔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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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의 일상, 각자의 고민, 언젠가 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대단한 말은 아니었지만, 참 편하고 다정했다.

이 친구와는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20살에 처음 떠난 여행도 함께 했던 친구.
그 이후로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서로의 서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
한때는 자주 만나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사는 곳도 달라 자주 보긴 어렵다.
전화는 자주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건 또 다르다.


이번 여행은 둘 다 시기가 딱 맞아서 가능한 만남이었다.
친구는 여행 경험이 많아 길도 잘 찾고,
일정도 거의 이끌어주었다.
나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해도 좋았다.
그게 고맙고, 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커피가 남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계속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날,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사람.
아마 이날의 가장 확실한 행복은,
이 대화, 이 친구, 이 시간이었다.


돌아가는 길엔 근처 유명한 소금빵 가게에 들렀고
따끈하고 고소한 빵 한 입에
“이 여행, 잘 될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하카타역 쪽 숙소로 천천히 걸어 돌아왔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계획도 없었고, 특별한 무언가도 없었지만
천천히 걷고, 많이 웃고, 잘 쉬었다.


여행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좋은 숙소와, 좋은 사람과, 느긋한 하루.
그걸로 첫날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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