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할 때가 많다. 꼭 혼자여야만 좋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반응하고 설명하고 괜찮은 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게 흐려질 때가 있다. 그런 날엔 혼자 있고 싶어진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감정에 맞춰주지 않아도 되고, 어떤 이미지로 보일 필요도 없는 그 시간이 나를 숨 쉬게 만든다. 이상하게도, 그런 조용한 날에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무언가가 일어난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감정은 조용히 밀려온다. 그리고 그런 순간엔 꼭 뭔가를 쓰고 싶어진다. 지금 이 상태를 언젠가 잊을까 봐, 혹은 지금의 이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며칠 전, 카페에 혼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왜 그렇게 다 슬퍼 보였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어깨가 조금 더 처져 있는 것 같고, 어떤 눈빛은 멀리 어디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 사람들은 어쩌면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나는 그 모습에 내 감정을 얹어 보았다. 그러고 나니 알게 됐다. 내가 읽어낸 감정은 사실 그들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묻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은 말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엔 그 말들이 조금 더 잘 들린다.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겉으로는 ‘우울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안엔 외로움도, 지침도, 말 못 한 서운함도 같이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한 단어로 묶어 말하고 끝내버릴 때가 많다. 그렇게 표현하고 나면 내 마음이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 든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말로 다듬지 않은 감정들을 그냥 그대로 느끼게 된다. 괜히 기분이 이상한 날, 괜히 눈물이 맺히는 날, 이유는 모르지만 속이 꽉 차 있는 날.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상태들. 그런 날의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워도, 혼자 있는 나에겐 비교적 정직하게 다가온다.
나는 글을 쓸 때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진다. 입으로 말할 땐 망설이던 말들도, 손으로 쓰면 조금 더 정확하게 나온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 아니라,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이해하기 위한 정리. 그래서 쓰는 일은 고요하고도 다정하다. 말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마음의 구석까지 천천히 닿는다. 그리고 그런 시간엔, 내가 정말로 괜찮은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믿고 있는 건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그런 질문은 늘 혼자 있을 때만 들려온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동안엔 감정보다 역할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이 언제나 편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날은 그 고요가 더 깊은 허전함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괜히 감정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보게 된다. 혼자 있는 틈 속에서야만 보이는 마음이 분명히 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스쳐 보내는 감정들, 말로 정리되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마음의 조각들. 그런 것들을 붙잡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어야 우리는 조금씩 나를 알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혼자 있는 걸 어려워하게 되었을까. 휴대폰을 끼고, 누군가의 말에 반응하고, 알림에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쉴 틈 없는 연결 속에서 자꾸만 뭔가를 확인받으려 한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시끄러운 상태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해야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침묵 속에서야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 사유는 고요한 틈에서 태어난다. 그 고요를 견디는 연습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꼭 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낯설고, 어떤 날은 나 자신과의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 안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감정 속에 있는지 조금은 더 솔직하게 알게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그게 진짜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런 내가 있다는 걸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나와 가까워지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