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요즘은 그냥 괜찮다. 누가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응, 잘 지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이 진짜라는 게 어쩐지 조금 낯설다. 예전 같았으면 그 말 뒤에 감춰진 감정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말 그대로다.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괜찮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마음이 조용하다. 일도 쉬고 있고, 매일 아주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불안하지 않다. 예전에는 이럴 때 오히려 불안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요즘은 항상 하는 주 4회 운동 루틴이 있고, 관심 있는 분야를 조금씩 공부하다 보면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다. 뭘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마음은 꽤 잘 정리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라서 그런 것 같다. 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움직이는 하루는, 작지만 확실한 균형을 만들어준다. 그 시간들이 지금 내 일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부분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장의 시간’이 꼭 바쁘고 치열한 것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지 않고, 계획 없이 보내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은 나름의 방식으로 정돈되고 있다는 걸 요즘 깨닫는다. 예전 같았으면 뭔가를 해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내 감정을 고르게 만들어주는 걸 본다. 감정이라는 것도 꼭 격하게 흔들려야만 진짜는 아닌 것 같다. 마음이 잔잔하게 머무는 상태가 때론 더 솔직하다.
이런 고요함은 별로 멋있지 않아서 글로도 잘 안 써진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대개 ‘드라마틱한 일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인생은 그런 순간보다 ‘대단한 일은 없지만 마음은 괜찮은 날’이 훨씬 더 많다. 그걸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나름대로 지금의 마음을 붙잡아보는 중이다. 마음이 고요할 때도 나를 써야, 마음이 복잡할 때도 나한테 돌아올 수 있으니까.
가끔은 스스로 놀란다. “괜찮다”고 말했는데, 정말 괜찮은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어서. 예전의 괜찮다는 말은 뭔가를 눌러 담는 말이었고,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일종의 ‘방어’였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 진짜 괜찮을 땐 설명도, 해명도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그냥 가볍게 인정하게 된다. 딱히 의지가 강해진 것도 아니고, 명상이 효과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조용히 흘러가면서 마음이 조금 덜 예민해졌을 뿐이다. 고요한 마음은 별로 특별하지 않아서 자주 지나치지만, 사실은 제일 정확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사실 말이 그렇지, 나도 여전히 종종 멍하니 앉아 있다가 ‘뭐라도 더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이 편안하긴 한데, 그 편안함이 꼭 지속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지금은 그렇다. 오늘 하루는, 그냥 괜찮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을 인정해주는 일이, 내 삶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