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친해지는 방법

마음의 사용법

by 찌니

나는 한동안 내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말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특별히 누구 때문은 아니었다. 누가 억지로 나를 밀어붙인 것도 아니었고, 무리한 책임을 떠안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늘 어떤 것들에 떠밀리듯 움직였다. 주변은 항상 시끄러웠다. 거리의 소음이나 화면 속 말들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종류의 판단, 기준, 피드백, 기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 자신’이라는 작은 존재는 금방 묻힌다. 나는 그 안에서 비교당하고, 해석당하고, 규정되면서 조금씩 조용해졌고, 결국엔 나 자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 게 편했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척하는 게 익숙해졌다. 겉으론 아무 문제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마치 혼잡한 시장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오가고,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인다. 그 틈에서 나는 가만히 서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휘둘려 따라 걷고 있었던 것이다. 멈춰 설 여유가 없었다기보다는, 멈춰도 조용해질 공간이 없었던 것에 가까웠다. 내 안의 소리는 자꾸만 작아졌고, 세상의 소리만 점점 더 커졌다. 그래서 결국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지?’라는 질문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귀를 막아야 했고, 눈을 감아야 했고, 잠시라도 이 소란에서 벗어날 틈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그 틈을 비로소 갖게 되었다. 처음엔 낯설었다. 외롭다기보다는 어색했다. 조용함이 이렇게 불편한 감정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음 속에선 들리지 않던 내 생각들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감정들, 묻어두었던 말들, 그리고 늘 대답 없이 삼켜버린 질문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어색하게 바라봤고, 천천히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너는 뭘 좋아해? 그때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 이 길이 정말 너한테 맞는 걸까? 그 질문들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래 나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내가 이제 다시 묻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따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생긴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다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지금 나는 어떤 기분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시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무 성과도 없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게 없고, 생산적인 결과물 하나 남지 않는 시간이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런 시간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시간이었음을 안다. 그것은 ‘멍 때리는 시간’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을 걷어내고 내 안의 미세한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나를 어디로 데려간다.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 내가 나에게 실망했던 순간들, 이제야 조금씩 용서하고 싶은 마음들. 그런 것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나와 친해지는 중’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아직도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어떤 날은 왜 이렇게 불안한지 알 수 없고, 어떤 날은 뜻밖의 장면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꼭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안을 무조건 없애야 할 감정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흔들림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건 어떤 성장의 증거라기보다는, 내가 내 감정과 편을 먹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예전에는 나를 돌본다는 말이, 뭔가 특별한 힐링의 의식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건 단지 아주 작은 질문 하나를 자주 던지는 일이다. 오늘 너는 어땠어? 어디에서 힘이 들었어? 뭐가 조금은 괜찮았어? 그렇게 묻는 일이 쌓이면, 언젠가는 더 단단하게 나와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나랑 친해지는 방법은 사실 어렵지 않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주변의 소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만 확보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조금씩 나에게로 걸어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누구보다 먼저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기. 아무도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내 마음을 살펴주는 사람 되기.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더 이상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안의 울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내가 찾고 있는 친밀함의 첫걸음이고, 앞으로도 내가 계속 연습하고 싶은 마음의 사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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