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용법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뤄가는 속도는 참 다 다르다. 누군가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무언가를 확신하고, 누군가는 서른이 넘어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또 다른 사람은 오랫동안 하나의 길을 고집한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자주 눈치를 본다.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 길은 이제 뒤늦은 선택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 사람들은 이미 저만큼 앞서 있는데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비교의 감각이 마음 깊은 곳을 톡톡 건드릴 때마다, 나는 내가 선택한 방향이 틀렸다고 느끼기보다는, 그저 속도가 뒤처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뒤처짐’은 마치 내가 어딘가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으로 바뀌곤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한바탕 몰려가고 난 뒤에 남는 건 언제나 고요한 자각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빠르게 가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조금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더 신중해지고, 마음이 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한 번 멈추면 다시 속도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을 뿐인데,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과 시계는 자꾸만 ‘지금 아니면 늦는다’고 말한다. 그 말에 매번 흔들리고 싶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그 속도에 맞춰 걷지 못하면 내가 무책임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무책임한 게 아니라, 나에게 정직한 것뿐이었다는 걸.
살면서 했던 선택 중에는 타인의 속도에 맞춰 한 일들도 있다. 누군가의 조언이 합리적으로 들렸고, 그 방향이 지금 내 상황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에 받아들인 선택들. 하지만 그런 선택은 항상 어딘가 어긋났다. 내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행동만 앞섰고, 감정은 따라가지 못한 채 뒤에 남겨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더 완고하고, 몸보다 더 천천히 움직이는 성질이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웬만하면 내가 ‘충분히 기다렸다’고 느낄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늦더라도, 돌더라도, 그게 내가 다치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방향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만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건 사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으로 조급함을 넘길 수도 있고, ‘다들 저렇게 사는데 나만 왜 이럴까’라는 자책감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면,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조금씩 다듬어가는 길을 고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느린 대신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삶, 쉽게 지치지 않고 꾸준히 가는 삶,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필요한 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 나는 이제 그런 삶을 원한다.
지금 나는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예전보다 훨씬 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는 법을 배우고 있고, 그런 마음이 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누군가는 빠르게 멀리 가고, 누군가는 금방 목표를 이룰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대로의 리듬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나에게 정직한 마음으로 내딛는 걸음이라면, 그게 어디든 결국 나를 위한 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