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용법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초조했고, 하루가 끝났을 때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찝찝했다. 물론 누가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어떤 거대한 의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늘 바쁜 척, 움직이는 척, 효율적인 척을 하며 시간을 채우곤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사라져 있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았고, 멈추는 건 뭔가 잘못된 일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짜 지쳐버리는 날은 언제나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때’가 아니라, 나를 무시한 채 하루를 흘려보냈을 때였다.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나를 따라오지 못한 날, 나는 유독 무겁고 답답했다. 그런 날들 속에서 겨우겨우 찾아낸 건 ‘잠깐 멈출 수 있는 용기’였다. 처음엔 그게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해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쉬어도 되나? 게으른 건 아닐까? 혹은, 이 멈춤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별별 생각들이 머리를 휘감았지만, 막상 멈춰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건 멈춤이 아니라, 멈춰야 보이는 내 마음이었다는 걸.
그 시간 안에서 나는 그동안의 나를 하나씩 정리해보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지치게 했는지, 언제부터 내가 나를 밀어붙였는지, 그리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런 질문들은 평소엔 너무 크고 무거워서 꺼내기조차 어려웠지만, 조용한 시간 속에서는 오히려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그 질문들에 명확한 답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을 ‘나 자신이 나에게’ 던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뭔가 회복되는 느낌이 있었다. 세상이 나에게 끊임없이 속도와 방향을 요구하는 동안, 정작 나는 내 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불안했다. 이렇게 멈춰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뭔가를 하지 않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점점 더 멀리 가는 것 같고, 나는 이 자리에서 계속 돌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돌고 있다’는 감각 안에도 배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같은 고민을 반복하면서도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고, 예전에는 지나쳤던 감정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줄 알게 되었고, 속도를 내기보다 리듬을 느끼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똑같이 보이는 하루들이 사실은 전부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멈춘다는 건, 단순히 쉬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건 어떤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무뎌졌던 감정, 무시되던 욕구, 외면되던 피로 같은 것들이 조용히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간. 그 목소리를 억지로 조용히 시키기보단, 듣고 이해해보려는 연습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그렇게 잠깐 멈추는 시간이 쌓이자, 나는 비로소 무엇을 더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평온을 배웠고, 나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내가 무너지는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 어쩌면 진짜 강한 사람은 끊임없이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걸 뒤늦게, 아주 조용히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멈춤이 처음부터 잘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아직도 종종,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날이 있다. 괜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란 존재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아주 작게라도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진짜 뭔가를 하고 싶은 날인지, 아니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움직이려는 건지. 그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억지로 일어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가 아니라, 내 마음이 말하는 속도에 따라 움직이는 연습. 그게 요즘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멈춤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