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멀쩡한데 속은 엉망인 느낌

마음의 사용법

by 찌니


요즘 나는 겉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일상을 무리 없이 흘려보내고, 누군가 말을 걸면 나름의 대답을 하고, 때론 웃기도 하면서 하루를 살아낸다. 딱히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 드러날 만큼 어두운 구석도 없다. 주변에서 보기엔 별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나 자신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도 잘 모르고 있다.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흐릿한 상태. 웃고는 있지만, 웃는 이유는 모르겠고, 가만히 있으면 뭔가 불안한데, 뭐가 불안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게 요즘의 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는 데 익숙해졌다. 힘들다는 말이 입 밖으로 잘 안 나오고,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버티는 쪽을 택한다. “나 요즘 좀 그래.”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다가도, 결국 “아냐, 그냥 좀 피곤해.”로 바뀐다. 정말 피곤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인데도 말이다. 자꾸만 멀쩡한 척하게 된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처럼, 항상 뭔가를 잘 버텨내는 사람처럼 보여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다. 사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는데, 내가 먼저 그런 역할을 만들어서 나를 가두고 있었다. 괜찮아 보이기 위해 더 애쓰고, 애쓸수록 속은 더 흐트러졌다.

그 간극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겉은 여전히 웃고 있고, 일도 하고 있고,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진짜 나와 너무 달라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조차 내 속을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지?” 스스로에게 물으면, 대답이 없다. 멀쩡한 척하느라 진짜 감정을 묻어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슬픈지, 지친지, 외로운지조차 헷갈릴 만큼 감정이 어딘가에 엉켜 있다. ‘잘 지내’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그 말에 내가 속을 정도다.

그럴 때면 괜히 혼자가 되고 싶어진다. 아무도 모르게 그냥 사라지고 싶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겉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속에서는 끊임없이 무너지고 있고, 그게 티가 나면 안 된다는 압박 때문에 더 조용히 무너지는 아이러니. 그래서 결국 아무도 내 상태를 모른다. 정말 말하지 않아서 모르는 건지, 아니면 말해도 알아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포기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 고요한 무너짐 속에서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

그런데 이런 감정들조차 너무 오래되고 익숙하다 보니, 이제는 무너지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쯤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 괜찮은 나를 보며 또 실망하고, 그 실망을 드러낼 수 없어서 다시 감추고, 그러다 보면 겉은 더 단단해지고 속은 더 약해진다. 정말 이상한 구조다. 스스로를 지키려던 껍데기가 오히려 나를 더 갇히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요즘 들어 조금씩 생각을 바꾸려 한다. 이 겉과 속의 괴리,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사람은 누구나 멀쩡한 얼굴 뒤에 각자의 무너짐을 안고 살아가는 거라고. 그래서 이제는 내 속이 엉망이라는 걸 인정해보려 한다. 겉은 멀쩡할 수 있지만, 속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내가 나약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속이 흐트러졌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회복의 시작일 수도 있다고. 괜찮아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게 괜찮지는 않다. 아마 앞으로도 자주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너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겉이든 속이든, 단단하든 엉망이든, 그 모두가 나라는 걸 조금씩 인정하려고 한다. 그게 어쩌면 나를 다시 연결해주는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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