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용법
가을을 탔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울렁이고, 어떤 날은 괜히 서럽고, 어떤 날은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조금만 차가워져도 마음도 따라 식는 것 같고, 누군가 아무 의도 없이 던진 말에도 이유 없이 며칠씩 묻혀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 이어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괜히 지쳤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도, 하고 싶던 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그냥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조금 무기력했고, 조금 지쳤고, 그냥 ‘지금은 이런 때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를 눌러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 며칠, 마음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전환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오늘은 뭔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이불을 걷어내듯, 내 안에 깔려 있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노트북을 열고, 밀어뒀던 메모를 들여다보고,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히 잘 되는 건 아니지만, 그걸 다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기특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뭔가를 잘 해내는 사람이기보다는, 그냥 ‘버티는 사람’에 가까웠다. 마음이 무너져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키는 쪽을 택했다. 누구에게 털어놓기보다는, 조용히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감정은 꺼내기도 전에 식었고, 어떤 마음은 애써 꾹 눌러가며 지나쳤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버티는 법만 너무 잘하게 됐다. 잠깐 무너져도 금방 수습하고, 울컥해도 겉으론 덤덤하게 넘기고. 그게 익숙해지니까, 무너지지 않는 게 능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그냥 버티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다시 ‘살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멈춰 있었던 시간 동안에도 마음은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던 거고, 그 끝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내민 손을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 그만 눕자’, ‘다시 해보자’, ‘이번엔 조금 다르게 해보자’는 말이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든다. 여전히 가끔은 멍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예전보다 조금 더 빨리 돌아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는 예전처럼 무작정 참기만 하지 않으려 한다. 버티는 건 여전히 필요하겠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나를 살피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감정이 흐릿한 날엔 흐릿한 대로, 기운이 없는 날엔 없는 대로, 그런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괜찮다. 지금처럼만 아주 천천히라도 나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그렇게 오늘도 내 마음을 다시 살아보려 한다 아주 천천히, 내가 괜찮아지는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