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용법
나는 나를 제법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좋아하는 계절, 자주 찾게 되는 카페 분위기, 싫어하는 음식, 어울리는 옷 색깔.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었고, 어딘가에 소개해야 할 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정리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취향은 분명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문득문득, 그게 정말 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해온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늘 같은 선택지만 골라왔고, 그 반복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고정된 틀 속에 가두어버렸던 것 같다는 느낌.
요즘 나는 나도 몰랐던 감각들에 반응하는 나를 자주 마주친다. 전에는 별 관심 없던 분야의 글을 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굳이 틀지 않던 음악 장르에 괜히 귀가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원래 이런 거 안 좋아했는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그 순간의 기분에 집중해보면 이상하게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낯선 감각에서 오는 새로움이 내 안의 무언가를 깨우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예전엔 항상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만 반복하며 내 세계를 다져왔다면, 요즘은 관심 밖의 것들 속에서 내 안에 없던 조각들을 줍고 있는 느낌이다.
그 조각들은 작고 어설퍼서 아직은 어디에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나하나가 다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잘 아는 나에서, 모르는 나를 알아가는 쪽으로 시선이 옮겨지자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확신하지 않아도 괜찮고,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뭔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도, 그저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예전엔 뭔가를 좋아하려면 그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만 했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내 것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끌리는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는 걸로 충분하다.
살면서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는 말들을 자주 쓰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나는 이런 게 안 맞는다. 그런데 그런 문장들에 너무 오래 기대고 있으면, 그 바깥에 있는 나를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어느 순간 나는 그런 설명이 편하긴 해도 꼭 나를 온전히 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 대신, ‘나는 지금 뭘 좋아하게 되었을까’를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는 쪽을 택하고 있다. 정해진 나를 반복하기보다는, 아직 다 알아가지 못한 나를 조금씩 들여다보는 쪽으로.
취향이라는 건 완성된 무언가가 아니라, 살아가며 계속 달라지는 감각의 모양새 같기도 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조금 다르고, 내일의 나는 또 오늘과는 다른 색을 띨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 조각들을 줍는 일이 나에게는 충분한 삶의 방향이다. 어쩌다 발견한 문장 하나, 스쳐지나간 풍경,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나의 취향을 이룬다. 나는 아직도 나를 다 모르고, 그래서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조각들이 모여 언젠가 어떤 나를 이루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중이다. 아주 작은 마음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며, 오늘도 내 취향의 조각을 하나 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