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하루, 문을 닫는 손

이름 없는 사람들

by 찌니


폐점 후의 매장에서는 낮 동안 숨겨져 있던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소음이 사라진 공간 안에서 손님이 남기고 간 흔적들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바닥에 남은 발자국, 진열대 아래 굴러 들어간 작은 포장지, 방향을 잃은 상품의 미묘한 각도, 손바닥이 잠시 닿았던 자리의 흐림. 누군가의 하루가 흘러간 증거들은 사람보다 오래 남아 있다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제 모습을 내놓는다. 정리하는 손은 그 흔적들을 따라가며 오늘의 시간을 되짚는다. 무엇이 움직였는지, 어디서 망설임이 있었는지, 어떤 자리에서 잠시 머물렀는지. 말 없이 지나가도 공간은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늘 뒤에 남은 한 사람뿐이다.

흔적을 지우는 일은 단순한 정돈이 아니라, 하루라는 시간을 ‘읽는’ 과정에 가깝다.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 간격에는 오래 고민했던 움직임이 있고, 서두르느라 흐트러진 옷자락에는 잠깐의 조급함이 묻어 있다. 손끝으로 그 미세한 차이를 더듬다 보면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말보다 물건에 먼저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리는 그 마음을 비워내는 일이다. 흔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오늘이라는 시간이 완전히 끝난다. 남겨진 온기와 각도, 방향과 여백을 살피는 동안, 나는 종종 이 일이 ‘없음’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내 흔적이 남지 않아야 하고, 내가 만진 것들은 다시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역할이 완성되는 자리. 그 조용한 모순 속에서, 공간은 다시 처음의 호흡을 찾는다.

마지막 스위치를 끄면 매장은 하루 중 가장 무표정한 얼굴을 드러낸다. 낮 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은 모두 지워져, 아무 일도 없었던 방처럼 다시 평평해진다. 그렇게 흔적이 사라지고 나서야 다음 하루가 들어올 자리가 열린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이 반복이 매일의 질서를 만든다. 이름 없이, 기록 없이. 그러나 누군가의 하루가 조용히 끝나고 다시 시작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손길. 내가 남기지 않은 흔적들이 이 공간의 시간표를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끝을 붙드는 역할을 깊은 어둠 속에서 계속 이어간다. 잊혀져도 되는 자리에서, 사라져야만 완성되는 일을 하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