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깊은 밤의 건물은 낮과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수백 개의 발걸음이 스쳐 지나갔던 로비는 마치 누군가의 숨이 멈춘 자리처럼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불빛이 절반만 켜진 긴 복도에서는 작은 기계음조차 크게 울리고, 문틈에서 스며 나오는 바람에도 방향이 있다. 야간 경비원은 이 고요한 공간을 천천히 걸어 다닌다. 낮에는 흐릿했던 것들이 이 시간에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벽에 남아 있는 체온의 잔향,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래 서 있었던 사람의 그림자 같은 느낌, 버려진 종이컵이 가리키는 방향에까지 오늘의 시간이 묻어 있다. 새벽의 건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가장 많은 것을 기억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 기억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이 시간의 마지막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이다.
순찰은 단순한 점검이 아니다. 공간이 제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오늘의 도시가 무사히 지나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경비원의 걸음은 일정하고 느리며, 보는 곳은 늘 같지만, 그 안에서 포착되는 것은 매일 다르다. 누구도 보지 못한 작은 충돌의 흔적, 급하게 닫힌 문이 남긴 얇은 절선, 책상의 방향이 미세하게 달라진 자리. 사람들은 자신이 남긴 흔적을 기억하지 않지만, 공간은 그것을 잊지 않는다. 고요 속에서 경비원은 그 흔적들을 가장 가까이서 읽는다. 낮의 소음이 사라진 빈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건물을 지키는 일은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감각보다 ‘누군가의 사라짐을 바라본다’는 쪽에 더 가깝다. 존재가 지난 자리의 미세한 흔들림을 읽고, 그것을 통해 이 밤의 안전을 확인하는 일. 이때 그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이 공간의 흐름을 붙들고 있다.
가장 깊은 새벽이 오면, 건물은 마침내 하루를 내려놓는다. 온도가 조금 내려가고, 공기에서 낮의 냄새가 빠져나가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조차 조금 더 흐릿해진다. 조용한 순찰이 끝나고 로비의 불빛을 하나씩 줄여갈 때, 경비원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하루의 문 앞에 서 있게 된다.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의 이 시간은, 어쩌면 그만의 세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다치기 쉬운 순간들을 대신 통과하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공간을 온전히 지켜낸다.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아도, 이 새벽의 고요한 리듬이 도시의 하루를 완성한다. 가장 늦게 하루를 붙들고, 가장 먼저 새날을 맞는 손. 어둠과 빛 사이를 조용히 이어주는 사람. 그가 서 있는 자리 위로, 곧 사람들의 시간이 다시 흘러들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