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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러나 진하게

2화.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바다처럼

by 찌니


요즘, 이유 없이 지칠 때가 많다.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현실이라는 파도에 하루하루 조금씩 떠밀린다.

해야 할 일은 늘고,

감당해야 할 감정은 줄지 않는다.


그럴 땐 바다를 보러 간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냥 조용히, 가만히.


바다는 묻지 않는다.

왜 힘든지,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파도만 밀어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조용함이 더 큰 위로가 된다.

바다 앞에 서 있으면

마음속 고민과 불안이 밀물과 썰물처럼 휩쓸려간다.

마치 아무 일 없던 듯이,

처음부터 없던 감정처럼.


그 깊고 넓은 품은

내가 무너진 날도, 말없이 안아준다.

그 안에선

내 속도대로 숨 쉴 수 있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나는 문득,

바다가 엄마 같다고 느낀다.

아무 말 없이 포근하게 감싸주고,

언제 찾아가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내 옆에 있어주는 존재.


그 품 안에서라면

약해도 괜찮고,

울지 않아도 다 이해받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나는 바다 앞에서

살며시 마음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다시,

고요하게 살아갈 힘을 조금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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