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진하게

1화. 인스턴트 말고, 내 삶은 핸드드립으로

by 찌니


요즘은 뭐든 빠르다.

답장은 빠를수록 센스 있고,

정보는 짧을수록 좋다고 한다.

모두가 앞다투어 빠른 길을 찾는다.


커피도 그렇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손만 뻗으면 금세 완성되는 인스턴트커피.

맛보다 속도가 중요한 시대다.


나는 그런 흐름에서 잠깐 빠져나와,

작은 카페에 들어간다.

어딘가 한적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카페.

점원이 원두를 갈고, 물을 천천히 붓는 그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 몇 분의 시간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허락받은 느림.


사람들은 말한다.

빨리 이해하고, 빨리 정리하고, 빨리 결과를 내야 한다고.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빠른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천천히 우러난 커피가 더 깊은 향을 가진다는 걸.

그리고 어떤 감정은

급하게 말하면 사라지고,

조금 기다려야 비로소 진하게 남는다는 걸.


마음도 그렇다.

누군가의 말에 바로 반응하기보다,

한 번쯤 안으로 가라앉히고 나서야

진짜 내 감정이 뭔지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사는 일도 그렇다.

빠르게 성공하고, 빠르게 안정을 잡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너는 너의 속도로 살고 있는 중이야”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 말이, 핸드드립 커피 한 잔처럼 조용히 내 마음을 데운다.


나는 누군가의 손으로 천천히 내린 커피를 마신다.

그렇게 하루를 마시고,

그렇게 나를 마신다.


천천히, 그러나 진하게.

오늘도 나는 그 향을 기다린다.

내 안에 피어오를, 아직 다 추출되지 않은 어떤 마음의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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