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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그러나 진하게

3화.노래 – 흘러나온 감정의 조각들

by 찌니

가끔은 노래가 먼저 나를 알아봐줄 때가 있다.
무심코 틀어둔 플레이리스트에서, 아니면 지나가던 가게 스피커에서, 문득 한 소절이 마음에 박힌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 이유 없이 지치고, 텅 빈 기분.
그런데 그 노래 한 곡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정확히 어떤 감정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던 찰나, 그 노래는 나 대신 말해줬다.

“아, 나 지금 이런 감정이었구나.”


나는 늘 혼자 노래를 듣는다.
누구와 함께 들어야 감정이 완성되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이어폰은 항상 내 귀에만 꽂혀 있고, 내 기분과 리듬에만 집중한 채.
그러다 보니, 노래는 나의 감정 저장소가 되었다.
들었던 순간의 공기, 표정, 눈빛, 그때의 나를 다 품은 채로.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멜론 앱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유튜브 뮤직으로 대부분의 노래를 듣고 있지만,
멜론 속 플레이리스트는 나의 20살부터의 감정이 그대로 담긴 타임캡슐 같다.


“이때 이런 노래를 들었구나, 아 이건 그때 너무 자주 들어서 가사 없이도 따라 부르던 곡인데.”
그 시절의 내가 만든 재생목록은, 지금의 내가 감히 지울 수 없는 기록처럼 남아 있다.
듣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노래들이 있다.
그 노래들은 더 이상 내 일상에 흐르지 않지만,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반복 재생 중이다.


노래는 그렇게 나의 기억을 데우고,
멈춰 있던 감정들을 다시 흐르게 만든다.
흘러나온 건 가사도 멜로디도 아니었다.
내가 애써 눌러둔 마음의 조각들이었다.

나는 오늘도 플레이리스트를 켠다.
이 노래는 어쩌면 지금의 나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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