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결을 따라, 마음의 방향으로
해가 바뀌었다. 숫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은 여전히 작년의 그림자 속에 남아 있다. 겨울은 깊어졌고, 창밖의 풍경은 익숙하다. 새해를 맞는다는 건 어쩌면 큰일이지만, 동시에 별일이 아니다.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되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 어딘가로 향한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 어깨 위에 조용히 얹힌다.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기로 했고, 올해는 조금 다정하게 나를 대해보자고 다짐했지만, 막상 삶이 시작되면 우리는 다시 나를 밀어붙인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불안, 누군가의 기대에 응답하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들이 조금씩 나를 몰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올해도 우리는, 다시 '나 자신을 살아내는 일'과 마주해야 한다.
살아낸다는 말은 조용하고, 무겁고, 진실하다. 거창한 성취가 없어도,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매일의 마음을 견디고, 책임을 지고, 자신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살아낸다는 말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누구나 삶의 겉모습은 다르게 꾸미지만, 결국 안쪽에서 마주하고 있는 감정들은 비슷하다. 지치고, 흔들리고, 때로는 아무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날들을 견디는 것.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우리는 점점 더 뼈저리게 알게 된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요즘은 잘 지내요?’라는 짧은 안부 속에서 늘 멈칫하게 된다. 잘 지낸다는 건 무엇일까? 특별한 문제 없이 살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뜻일까.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잃지 않고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거창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삶의 흐름 속에서 내가 나를 잊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괜찮은 하루라고.
나를 살아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 자책을 넘는 회복력, 타인의 시선을 견뎌내는 중심,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평범함을 이탈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의지. 이것들은 책으로 배울 수 없고,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다. 오직 내가 내 삶을 통과하면서 하나씩 익혀야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의미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 사는 것보다, 스스로를 지키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안다. 외부의 기준은 분명하지만, 내 안의 기준은 늘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새해라는 시간은 나를 완전히 바꿔주는 계기가 아니라, 그저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올해도 완벽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또다시 계획을 어기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낼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흔들릴 것이고, 스스로를 실망스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내가 나를 다시 바라보고, 다시 다정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살아가고 있잖아.”
올해는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다만 나는, 이 시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잊지 않고,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다짐이자, 가장 깊은 실천 아닐까. 올해도 결국, 나를 살아내는 일이 삶의 전부일 것이다. 다르게 살기보다는, 다정하게 살고 싶다. 멀리 가기보다는, 잊지 않고 머물고 싶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낸다면, 우리는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