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나라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

주제에 맞게 산다는 것

by 세모

대출을 받아 호주 유학을 하기로 결정하고는 곧장 유학원으로 찾아갔다.


주위에선 영주권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입을 모아 간호학과를 추천했지만, 의대를 준비하던 지난날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간호엔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돈 잘 번다는 엔지니어가 되기로 마음먹고, 서호주에서 공대로 가장 순위가 높은 대학교의 화학공학과에 지원했다.


부자나라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였는지, 재정증명도 하지 않았음에도 학생비자는 쉽게 나왔고, 엄마는 약속대로 1억도 채 하지 않던 유일한 재산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1년치 학비였던 4천만원 남짓한 돈을 내 호주 계좌로 보내주셨다.


하지만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대학 생활의 시작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계급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고,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부모님 집에 사는 호주인 친구들은 생활비 걱정이 없었으며 호주 정부의 깐깐한 재정심사를 통과한 ‘가난한 나라’ 출신의 유학생들은 그 나라 상위 1% 재력을 가진 부모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여유롭게 공부했다.


그들은 알바같은건 해본 적도 없었고, 값비싼 기숙사에 살며 끼니마다 밖에서 음식을 사 먹었다.

그런 삶이 너무나도 익숙한 듯했다.


방학이면 어김없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고국으로 떠났고, 학기 시작 직전에 역시 자기 나라가 최고라며 슬픈 얼굴을 하곤 다시 호주에 돌아왔다.


학교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물었다.

“넌 가족 안 보고 싶어?”
“한국이 그립지 않아?”


처음엔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거라고 솔직히 말했더니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러 가는 건데 비행기값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눈빛이었다.


그래. 돈 몇 푼 없어 가족을 못 보러 간다니, 그 말이 그들에겐 얼마나 낯설었을까.


난 어느샌가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는 개인적인 성향의 ‘코리안 걸’이 되어 있었다.


현실은 방학이면 매일 아침 엄마와 통화하는 걸로 외로움을 달래며 다음 학기 생활비를 벌기 위해 풀타임으로 일해야 했던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었는데.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인지, 학교 친구들은 나에게 유독 관심이 많았다. 수업이 끝나면 다 같이 무리 지어 커피를 사러 우르르 캠퍼스 카페로 향했고, 나도 함께 가자며 자연스럽게 끼워주곤 했다.


하지만 이곳 호주는 학생들에게도 자비란 없는 나라다.

학교 안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 잔 5달러.


어느 순간부터 난 다회용 컵에 인스턴트커피 두 개를 담아 가방에 넣어 다녔다. 그리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볼까 잽싸게 공용 주방으로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수업 전에 카페에서 미리 커피를 사 온 것처럼 행동했다.


강의 시작 전에 만들어 간 그 커피는 30분이면 다 식어버렸지만, 나는 두 시간 내내 차가워진 커피를 반모금씩 나눠 마셨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커피 마시러 갈래?" 하고 묻는 순간에도 그 컵엔 아직 마시다 남은 커피가 있어야 했으니까.


그래야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이 부자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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