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로 시작한 흙수저의 호주 유학
워홀로 호주에 온 지 6개월쯤 되었을 무렵, 새벽마다 카페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엄마에게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했다.
한평생 걱정만 안겨드렸던 딸내미, 이제는 성인이 되어 지구 반대편 영어나라에서 당당히 돈도 벌고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한국에서 열여섯 시간.
직항 비행기 편 조차 없는 호주 퍼스.
공항 경유에 자신 없던 엄마는 오랜 동네 친구 두 분과 함께 퍼스에 왔고 우리 집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차 한 대 없던 외노자 신분으로 어른 세 분을 모시고 일주일 간 가이드를 한다는 건 꽤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도시 곳곳을 버스와 지하철로 누비며 최대한 예쁜 모습만 보여드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날 밤, 엄마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엄마가 집 담보대출받아서 학비 해줄 테니까 굳이 독일 가려고 하지 말고 여기서 공부하는 건 어때?”
호주 대학교의 학비는 1년에 4~5천만 원. 엄마의 전 재산인 양산의 작은 아파트는 고작 8천만 원 남짓이었다. 우리가 가진 걸 몽땅 털어도 생활비는커녕 졸업까지 학비조차 다 낼 수 없었다.
“우리 형편에 여기서 유학이 가능해?”
그러자 엄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집 담보대출도 받고, 이모한테도 좀 빌리고, 보험 약관 대출도 받을 수 있고.
너 졸업할 때까지 내가 4년 바짝 열심히 일하면 딸 하나 있는 거 대학교 학비 하나 못 대주겠니?
우리 같이 해보자. 엄마도 열심히 노력해 볼게.“
나는 몰랐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엄마의 전 재산을 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저 이 나라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이후로 내 삶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인생이 아니었다.
이건 엄마와 나, 우리 둘이 함께 짊어진 선택이었다.
엄마는 어렵게 얻은 유일한 가족인 당신의 하나뿐인 외동딸이, 머나먼 낯선 나라에서 더 이상 우울증에 허덕이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말없이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그 안도 속에는 한때 자신의 실수로 내가 수능조차 치르지 못하게 되었던 그날의 기억도 조용히 묻혀 있었을 것이다.
설령 가진 걸 모두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딸의 행복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던 게 엄마의 마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