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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김성신/ 이미그레이션

by 김성신 시인

이미그레이션


김성신

낮은 짧고 밤은 길지요

그 반대여도 상관은 없지만요

엄마는 늘 빈 젖만 물렸지요

빈 것들은 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인지,

나는 예멘에서 왔어요

아멘이 아니고 예멘 말입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플래시가 팡팡 터지고

텔레비전에선 우리가 살던 집과

외양간의 늙은 소들을 비췄지요

화면 속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름 모를 작은 나무 한 그루

포탄처럼 온통 붉었죠, 눈물은 아닐 거예요,

함께 온 예멘의 어른 몇은

이제는 이곳이 우리가 살 땅이라고 말했지요

아니, 살고 싶은 아름다운 섬이라고 말했지요

인형도 과자도 나무도 구름도

숭숭 구멍 뚫린 돌처럼

집을 잃은 바람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곳,

매일같이 시끄럽지만 그래서 평화로운 이곳,

발 동동 구르다 보면 하루해가 저만치 멀어지죠

제주는 태초부터 새콤한 감귤나무가 자라났나요?

새별오름에는 날마다 새 별이 떠오르나요?

질문할 때마다 엄마는 눈감고 젖이나 빨라고 했지만

그럴 때면, 나는 알아도 모르는 사람이 되죠

매일 아침 밀빵을 구우면

어떤 생각들은 이스트 없이 부풀다 이내 가라앉지요

엄마의 봉긋한 젖무덤이 저기 위, 한라봉 같아요

언제 터질지 몰라요, 엄마도 나도 저 구름도 말이죠

활활, 이글이글, 용암처럼 흘러

뜨겁게 이 섬을 덮으면 우리는 모두 즐거워질 수 있을는지,

앞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뒤가 잠잠해진 뒤에야 다시 제 몸을 일으키죠

이것은 아는 사람만 모르는 비밀 이야기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만 아는 매우 흔한 이야기

쉿,

ㅡ공시사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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