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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김성신/ 페트리코

by 김성신 시인

페트리코*


- 김성신


잊지 마, 내가 두 명이길 바라는 거야

빗방울은 누구나 초대하고 누구의 방문도 거절할 수 있어


이 집엔 누구도 사람이 아니어서 종종 계절의 냄새가 물씬거린다

복도의 불빛, 옷장, 미니 냉장고, 커튼

거기에 서성이는 어떤 것


사라지는 어떤 것으로부터 벽은 안전할까

쫓기고 쫓는 복도의 발자국 소리

수직이 횡으로 멈추는 얼굴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벽은

다만 침묵할 의무가 있다


꿈과 생시 사이로 번지는 시선

들뜬 목소리로 재를 터는 전등

창을 열면 내게 눈을 떼지 못하는 다정은 충동적이다


입속 혀가 두텁게 희어지는 동안

구석을 흔드는 웃음이

깊이 박혀 숨이 되는

달이 기울고 있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너 닮은 한 줄을 마주쳐서

비막을 펼쳐 활공하는 하늘다람쥐처럼

동공에서 움푹해진 이름을 띄우는 듯

통기성이 좋아진 실루엣


누구도 믿지 않는

흠, 흠 따라 맡어봐

꼭 저편의 얄궃은 냄새 같아


힘겹게 몸 버둥거리자

손가락을 잇댄 사슬 풀어지고

꿈속에선 이미 잊어서


*비가 오기 시작할 때 마른 흙이 젖으면서 공기 중에 퍼지는 냄새


ㅡ2024년 문학들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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