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왜나무 숲에서
김성신
털머위. 가시나무도토리를 계단처럼 지나서 흘러온 먹구름이 이슬비를 수유중이다
곤줄박이 새 떼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닌다
유령처럼 상처를 그림자에 묻혀 걸을 때마다 뿌리는 허공을 붙든다 바람 맞서 질주하던 독백은 넘어지고 일어나길 수차례
숱한 삽질에 꺾인 발이 제대로 아물기 전에 이곳저곳 구덩를 파고 빗길 틀어 길을 낸다 목덜미에 쏟아지는 초록빛이 지난한 겨울을 단서처럼 반짝일 때 으슥한 곳에서 아왜나무가 야홰처럼 경건하게 두 팔을 하늘로 뻗는다
빛을 생식하는 그림자
등뼈 자세를 완성하듯
돌 틈과 돌 틈 사이 끙끙거리는 소리
내어놓기 힘든 당신 수족의 상처가 갈래갈래 뿌리 돋칠 때 길의 노면 미끄럽고 축축하다
경계 없이 뻗어가는 서사
간밤 악몽을 따라
아왜, 아왜 이름을 끝까지 걸어가면 말라가는 다리도 볼 수 있어
몸을 잠깐 벗고 가슴에 꽂힌 못을 뽑아볼까
당신은 아왜나무에서 기어나와 Daum 창을 단숨에 갉아 먹는 시의 서식지
붉음으로 가슴 부풀리고
무수한 고독으로 풍성해질 그늘
ㅡ2024년 생명과 문학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