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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거울

by 김성신 시인

거울


김성신


처음 들여다본 얼굴 앞에서

보이지 않는 나를 보려고 수십 개의 눈을 줄였지

입술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아주 천천히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었어


거울 위에 아무도 없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 건지

화장대 장미송이에는 마른 울음이 내려앉고

부재가 향기를 감쌌어


바라는 것을 찾을 때 더듬게 되는 좁고 패인 이마

이리저리 쓸리는 머리카락

두 눈 감았다 뜰 때 이곳은 미로의 천국

시절이 알맞게 출렁이지


사방에서 주목하는 나를 빠져 나가려면

구원이 필요한 것일까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선언

어떤 물질성도 없는 그늘을 품고


너머의 그림자를 위해 타협하듯 흔들리는 전등 빛

아무데나 들러붙는 왼 손

깊은 밤은 가벼워 사물을 뛰어오른다

끌어안는다

적어도 관찰하는 동안은 자유로우니까


부풀어진 이야기는 끊임이 없어

대뼈 위엄처럼 나오고 속눈썹 긴 음영이

말 키우기에 좋은 곳


막다른 골목에서 탈주를 꿈꾸는 당신은

내 거짓의 완성이죠


-2024년 포지션 여름호


성신

전남 장흥 출생

2017년 불교신문사 신춘문예 시 등단

광주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학박사

2022년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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