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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옹기를 옹호하다

by 김성신 시인

옹기를 옹호하다


김성신


옹기 속에는 돌아오지 못한 메아리가 산다


매년 국화주 빚는 날은 한지 창 위로 향기가 배곤 했다

안마당의 적막은 오래 묵은 손님이었고


된장독은 당신의 혼잣말을 가두기에 좋았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이 빠진 뚜껑이 달그락거렸다


볕 좋은 날이면 장맛이 골고루 빛가루처럼 퍼지고

장아찌를 담은 독은 연신 부글거렸다


효모는 참 예쁜 말이지

당신은 적막해짐으로 나를 부풀렸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장맛은 순해졌지


작고 여린 반딧불이 야광충으로 빛나는 저녁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장마는 양철지붕 녹슨 구멍 속으로 서신을 보냈고

땅거미 진 황토 위로 공벌레가 이슬처럼 굴렀다


나는 이따금 독 속을 열어 두었고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면

낯선 그림자가 내 등을 감싸곤 했다


ㅡ2023년 시와산문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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