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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인 아이들의 부모가 궁금해졌다.(1)

내가 영재 부모가 결코 될 수 없는 이유

by 꽤 괜찮은 사람

영어를 가르치면서 수없이 똑똑한 아이들을 많이 봐 왔다.직접 지도하면서 기대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내기에 그들의 선생님인 내가 덩달아 으쓱해지는 것은 예상치 못한 교육의 시너지이다.

문제 해결능력+ 이해력+분석력+창의력과 논리까지 모두 갖춘 대한민국 0.1%의 아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또 그들의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들의 부모들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그런 '영재'를 자녀로 두었을까? '라고 한 번이라고 궁금해 해 본 적이 있다면, 어쩌면 나의 글이 충분한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똑똑하고 소위 말해서 잘난 아이들 중의 TOP OF TOP은 전 시누들의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 중, 한 아이의 영어 정복기는 영어 교육자인 내가 봐도 입이 딱 벌어진다.


시골 산골에서 영어를 어렸을 때부터 줄줄 말하더니,

지역 내에 모든 영어 대회 상을 휩쓸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토익 900점을 넘더니 4학년이 되더니 토익 스피킹 최고 등급, 토익을 만점 받았다.

전국에 있는 영어 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것은 그 아이의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얼마 후, 그 시골 마을에서 영어를 잘 하는 그 아이를 보러 SBS영재 발굴단이 출동 했다.

그 아이는 청심중학교, 민족사관고등학교 수석, 미국의 아이비리그 합격 후 장학금까지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현재 비상 중이다.


그 아이의 동생도 청심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바로 얼마 전에 '민족사관고등학교 입학증'을 받았다.

이 아이 역시 영재 발굴단에 단골 출연을 하였다.

너무 많은 상을 받아서 상 받는 것이 일상이 되는 순간, 방송 취재가 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순간, 우수한 아이들이 모이는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1, 2등을 놓치지 않는 순간. 그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자타가 인정한 그 아이들은 '영재, 아주 특별한 영재'이었다.

"와! 대단하다!"라는 감탄사가 별 의미 없어질 때쯤, 사람들은 그 아이들의 부모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영재인, 특히 언어 천재인 그들의 부모는 아주 평범한 교사이다.

'소위 말하는 영어를 한 마디 못 하고 싫어하는...', 물론 교사라는 직업이 있기에 어느 정도의 학업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언어적인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외국인과의 소통이 자연스러운 그런 부모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방송에서 '어떻게 영어를 이렇게 잘할 수 있게 만들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아이들의 엄마인 그녀의 답변이 참 인상적이었다.


00어머님 : "그냥 특별하게 한 건 없고요, 제가 영어를 못 하고 싫어해서요. 자주 들려주고 그냥 책을 계속 읽게 했어요."


기자: "어? 진짜요? 다른 학원도 안 다니고 그렇게만 해도 아이들이 영어를 익힐 수 있나요?"


00어머님: "그럼요,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 했는데,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따라 하게 하고 읽게 했더니 말도 술술 나오고 듣는 것도 다 되고요.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었어요."


이 방송만 들으면 '내 아이는?' 이란 생각과 함께 부모로서의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정말 영재인 아이들은 학원 없이 영어 노출만으로도 그 어렵다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쉽게 합격하고 그 속에서도 1등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소위 말해서 누구나, 아무나, 손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지 않은가?



30년 가까이 통역, 영어 교사이고 영어에 감각이 있는 나는 그럼 여태껏 뭘 했을까?

내 아이들 역시 학원 근처에 얼씬도 안 했다.

내 어릴 적 무섭게 공부를 가르쳤던 친정 엄마처럼 되기 싫어서 나는 과감히 학원 대신 체험 학습과 여행을 선택했다.


"놀아! 많이 놀고, 많이 체험하자! 대신 책은 많이 읽자!"

'공부할 놈은 언젠가 결국 다 하게 되어 있어!' 나의 교육적 소신은 확고했다. 책이면 되고, 많은 경험, 체험을 해 주고 싶었다. 일을 하기에 바빴기도 했지만 '학원 뺑뺑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아이들은 나랑 영어로 소통하고 해외여행을 즐겨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틀려도 하는 정도인데.

원서를 줄줄 읽고, 어려운 단어를 매일 외우고 토플 주니어, 토플 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리딩 지수가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는 영재. 내 아이들은 그런 영재가 결코 될 수 없었다.


영재인 시댁의 아이들 속에서 내 아이들은 졸지에 평범하지도 못한 '평균 미달'로 순식간에 전락하였다.

전 시댁의 아이들은 00 외국어 고등학교, 00 과학고등학교, 00 국제학교, 상0 고등학교...

아이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한민국의 상위 학교들에 줄줄이 합격을 하기 시작했다.

합격 후 그들은 그 곳에서도 상위그룹 이었다. 참 신기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학력, 공부와는 담 쌓은 직업을 가졌었는데...

(괜한 자존심이 아닌 객관적인 학력으로 봐도 전 시누들의 학력이나 학습 능력?은 나와는

현저히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객관적인 분석이 아닐 수도 있다.

나의 뭉개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발악일 수도 있다.

나는 치졸하고 비겁해 보일 수 있지만 상대방의 약점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민족 사관 고등학교 1등, 아이비리그 수석 정도의 영재는 아니어도 다른 아이들 역시

앞장선 사촌 언니 오빠를 본받아 참 잘 만들어지고 참 잘 교육되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공부와 놀이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내 아이들은 점점

미운 오리 새끼도 아닌 '아주 못 생긴 오리 새끼'가 되어 버렸다.


어느덧, 명절마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비교의 잣대'는 아이들의 심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영재 사촌들 앞에서 아이들은 평범함 그 어디에도 낄 수 없는 '루저'가 되어 있었다.

이미 이혼한 나 역시, 다시 한번 아이들을 놓고 '엄마의 자격'을 평가 받아야 했다.

이혼은 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소리.


애 엄마는 대체 뭘 가르치는 거야? 엄마 구실을 똑바로 하고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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