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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인 아이들의 부모가 궁금해졌다.(2)

죽었다 깨어 나도 절대 영재 엄마가 될 수 없는 이유.

by 꽤 괜찮은 사람

민사고 수석. S사 영재 출연, 어렸을 적부터 전국의 영어 대회는 모두 1등. 시 X고 대학에서 Bio 전체 수석. 뼈 속까지 문과인 줄 알았던 아이가 하루 종일 랩실에서 쥐한테 주사를 넣고 실험을 하면서 전 세계 아이들 위해 1등이란 장학금을, honored student로 등극!



예일과 하버드 중 어디로 석사를 받아야 할지, 얼마나 더 많은 장학금을 주는 곳으로 갈지 고민.

그의 동생은 또 민사고. S사 영재 출연. 유엔 모의 토론 대회 1등. 이 아이의 기록을 또 뒤져 보면 전국 최초 영어 천재, 1등의 수식은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지역 전형으로 한림대학교 의대는 그냥 동네 옆집 가듯이 쉽게 합격하는 그런 성적.

여기까지는 전 남편 첫째 시누의 아이들 이야기다.


둘째 시누의 아이들은?

내 큰 아이와 동갑인 아이는, 포x고 전교 6등으로 1학기 종료.

서울대 약대는 쉽게 갈 수 있다고 학교 상담에서 선생님이 아주 흡족한 듯 말씀하셨단다.

그 아이의 동생은 또 외고 1등으로 수석 합격.

연락이 끊겼어야 함이 맞지만 여전히 매주 아이들이 친할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때마다 들려오는 '외손자 자랑'에 나의 귀는 어느 새 밀착되어 있다. 쿨한 척 했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씨, 대체 얼마나 잘하는 거야?'


그럼 마지막 남은 막내 시누의 아이들은?

큰 아이보다 한 살 적은 그 아이는 상X고를 덜컥 합격했다.

어릴 적 공부를 못했었는데, 매일 말썽만 피는 아이였는데, 믿었던 너마저... 결국, 나를 한 번 더 비참하게 만드는 구나!

그 아이의 상x고 합격 이후, 또 전교에서 손 꼽히게 잘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와르르 무너졌다.

나의 괜찮은 척하는 그 위선이..... 아주 보기 좋게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 아이의 여동생은 국제학교의 1등이다. 오빠 따라 상x를 갈지, 유학을 갈지 고민이다.


우리 아이들은 극히 평범하다. 아니 평범함을 거부하고 큰 아이는 자퇴를 하고, 중학교 1학년 때 포기했던 공부를 하느라 매일 씩씩대고 있다. 둘째는 즐겁고 평범한 보통의 중학생으로 수행평가와 내신 점수에 울고 웃는 아이. 즉, 우리 아이들은 그 어마어마한 전 시댁에게 있어서 참으로 미스터리인 아이들이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학원은 고사하고 그냥 학교를 잘 다니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라고 참 듣기 좋은 말을 한다.



괜찮아! 너희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돼. 1등 한다고 뭐가 대단한 거 같아? 아냐, 1등 해도, 서울대 수석이어도 목적 없이 하는 사람은 나중에 위기가 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은 이길 수 없어. 지금 너희들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도 엄마는 너희들이 훨씬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 학원도 안 다니면서 이렇게 잘 하고 있잖아. 천천히 해! 불안해하지 말고!!


나는 아이들에게 아주 큰 소리를 친다. 내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솔직히 전 큰 시누의 장녀는 까칠한 아이다. 하지만 그 아이를 빼고는 모두 인성도 좋다. 대인 관계도 좋고. 주말에 엄마가 학원을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표를 짜도 군말 없이 따랐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지독한 대형 어학원의 커리큘럼도 무난히 소화했다. 하기 싫은 학원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갔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는 재미를 모르는 녀석들이 1등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공부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더 잘 해 봐야지'라는 스스로 강한 동기가 생기자, 잘 하는 놈들이 더 잘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이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밤 12시까지 스스로 계획표를 짜고 공부를 한다. 그 아이들의 24시간은 어른인 내가 봐도 존경할 만하다. 어리지만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잡아간다.

대단한 아이들!!!


그 아이들의 엄마들, 내 전 시누들은 모두 지독하다. 매정할 만큼 단호하고 확고하다.

아이들 공부에 있어선 최고의 정보력을 갖고 있고, 하루 종일 그것을 연구한다.

좋은 학원, 최고의 일타 강사는 이미 다 그들 손바닥 안에 있다. 강원도에서 대치동 학원을 위해서 주말에는 라이딩도 기꺼이 한다.

대학 입시 전형, 내신, 각 고등학교 전형은 이미 분석을 마친 지 오래되었다.

그녀들은 자매들이 똘똘 뭉쳐서 서로 아이들의 성적을 평가하고 조언을 한다. 그녀들은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 전문가이다.

첫째 시누를 빼고는 다들 전업주부이다. 첫째 시누의 아이가 워낙 모범적 성과를 냈기 때문에 그녀들은 언니를 맹신한다. 전 시어머니는 매일 딸들의 아들,딸들이 얼마나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국위를 선양하면서 이름을 높이고 있는지를 보고 받는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우리 집 아이들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매일 내 일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매일 아이들의 하루 일상이 그저 무탈하게 지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는 아이들의 학원 따위는 관심이 없다. 배우고 싶다면 등록해 주고, 다니기 싫다면 그만 두게 한다.

'굳이 배우기 싫은데, 학원 관리비 내 주는 데 일조하면 뭐 하나?' 라는 마음으로 '너희들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말해. 그런데 억지로는 하지 마!' 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이것 저것 하게 하느라, 결국 아이의 자퇴도 말리지 못했다.

내 일 하느라 아이들 학교 일정도, 입시 전형도 전혀 모른다.


아이가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 입시를 앞둔 고 3 엄마이지만 나는 여전히 내 일이 먼저다.

바쁘니, 아이들에게 오늘도 배달의 음식을, 금융 치료를 적절하게 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내 아이들은 다른 속도로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라고 믿는다. 때로는 불안감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학원가로 아이들을 내몰고 싶진 않다. 내 아이들이 먼저 원하기 전에는!


그러면서도 나는 참 위선적이다.

'그 영재 아이들의 엄마들은 첫째 시누를 빼고는 모두 지방에 이름 모를 2년제를 나왔는데, 간신히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해서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엄마 말을 잘 듣고 아이들 모두 말도 안 될 만한 성과를 낼까?' 를 궁금해한다. 나는 내 진심의 염려 앞에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뒤돌아 보니, 아닌 듯하는 그 태연함도 결코 완벽하게 포장되지는 못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숨, 나도 모르게 믿음을 가장한 방임. 나도 모르게 그녀들과 내 학벌을, 사회적 위치를 비교한 치졸한 열등감.

그것들이 결코 그녀들의 그 아이들을 뛰어넘진 못 했던 것이다.

내 아이들은 원래 괜찮은 아이들인데, 엄마가 참 괜찮지 못하다.


이혼을 하고 나니 그것도 한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야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삶의 객관적 잣대가 생겼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나는 그닥 강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

흔들리는 내 정신 상태만큼, 늘 위태로웠다.

인정한다. 나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나의 옹졸하고 부끄러운 그 열등감들은 여전히 저 바닥에서 나를 놓아주질 않고 있다.


참, 내 인생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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