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은 없다면서요?
이: 이혼하셨어요? (앗, 죄송해요)
그럼 아이들은 있으세요?.. 누가 키워요?
혼: 혼자가 훨씬 편하죠. 혹시 만나시는 분이라도 있으세요?
남: 남자는 그래도 혼자는 나이 들면 좀 그렇더라고요. 괜찮으심 제가 주변에 좋은 분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이 정도에서 등급이 매겨진다.
최소한 '재혼회사'의 매니저들은 위의 조건에 불을 켜고 빠르게 검색을 마친다.
그래서 나의 전 남편은 재혼 시장에서 최고의 등급을 받았다.
전 시댁의 꽤나 괜찮은 재산도 긍정적인 조건이다.
아울러 못 봐줄 만큼(소위 말해서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는?)의 외모가 아니기에
큰 키와 나이 치고는 꽤 봐줄 만한, 아니 솔직히 말해서 잘 관리된 체격 좋은 남자로서
새로운 세상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더 웃긴 건, 20대 중반의 대학을 갓 졸업한 똑똑하고 예쁜 신입 여직원조차도 그를 선망의 대상,
와, 너 좀 잘 나간다!!
이:이혼하셨어요? 앗, 죄송해요. 괜한 걸 물어봤어요. (여기까지는 이혼한 남자, 여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 그러면, 아이들은요?
(사람들은 여기까지 물으면 양육비 출처와 양육비 금액을 궁금해한다.)
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그들의 눈은 말하고 있다.
혼: 혼자 세요? 혼자가 좋죠. 편하고. (누군가 있는지를 대놓고 묻는 사람들은 아직 없었다)
내가 혼자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찐한 사랑을 한다고 하면 다들 색안경을 끼고 볼 참이다.
막말로 내가 연애를 한다고 '엄마' 노릇을 소홀히 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녀): 여자 혼자 아이들 키우기 만만치 않죠? 그래도 뭐, 혼자 좋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재력(대략적으로 집이 자가인지, 전세 혹은 월세인지)
타고 다니는 차가 어떤 차인지
아이들의 양육은 대체 어느 정도 금액에서 하고 있는지.
예쁜지, 나이가 어린지...
학력, 성격, 종교, 친정집?
뭐니 뭐니 해도 나처럼 고학력자,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재력이 영 형편없는, 책임져야 할 식구가 많은
사연 많은 여자는 재혼 시장에서는 저 밑바닥이다.
재혼 회사의 매니저들은 참 솔직하다. 솔직해서 또 상처를 받는다.
딱히 큰 키가 아니고 작은 키다.
뛰어난 미모가 아니고
봐줄 만하고 조금 나쁘지 않은 정도? (아닌가? 이것도 내 착각이라면 그렇게 살란다.)
다행히 살도 안 쪘고, 꽤 어려 보인다. 그럼 뭐 하나?
나이가 이미 버젓이 숫자로 적혀 있는데.
나는 전 남편과 다르게 시작하고 있다.
이혼을 하고 나니 세상이 더 그렇다. 돈 있는 사람 VS. 없는 사람,
+ 뒤에 든든한 재력과 지원군이 있는지 없는지.......
나처럼 기구한 사연이 있는 여자는 그냥 뭘 해도 딱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동정심'을 받고 싶지도 않다.
이혼 후 10년이 지나고 나니, 그동안 몰랐던 '메타인지'가 총 발동된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나보고 '참, 쓸데없는 걱정에 자존감이 영 아니시군요. 삐딱하세요!'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이혼 후 세상은 그랬다.
그다지 모질지 못했던 성격에 유난히 울음도 많았던 아이인 나를 보호해 줬던
그 대단한 울타리를 스스로 뛰쳐나온 날.
나는 그게 얼마나 내 인생에서 교만했던 행동이었는지를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데, 이혼한 사람들을 평가하는 조사서에는 분명 정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