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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종달새 Oct 16. 2023

해영 씨의 딸 미희(1)

 올해 일흔이 된 해영 씨에게는 딸이 둘이 있다. 

 마흔다섯, 마흔셋의 딸, 둘 다 열 달 내내 입덧과 제왕절개로 힘들게 태어났다. 

 그중, 둘째 딸은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왔다. 아이의 이름을 미희라고 지었다. 아이는 유리관 속에서 남은 석 달을 채웠다. 출산을 하자, 해영 씨의 몸은 더 엉망이 되었다.  저혈압 쇼크, 빈혈,  조금이라도 힘들면 생기는 하혈까지.... 산부인과 의사는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이 난다고 계속 엄포다.


출산 후 몸조리를 해 준다고 고령의 할머니가 와 있었다.  꼼짝도 할 수 없이 종일 누워만 있는데도 도통 힘이 나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둘째 미희는 친정 엄마네 맡기기로 했다. ‘엄마네가 먼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미희 보고 오면 되지. 의사가 내 몸이 먼저라고 했잖아.’ 어린 미희에게 미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해영 씨 친정에서 미희는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출산 직후부터 미희를 봐주었던 할머니, 친정 엄마 그리고 고등학교 교사인 해영 씨의 남동생까지 모두 미희를 예뻐했다. 아이가 없이 조용했던 친정은 어린 미희로 인해서 생기가 불기 시작했다.  


“해영아, 미희는 어쩜 저렇게 조그마한 애가 목소리도 예쁘고, 노래도 잘하니? 미희 초등학교 가서도 여기서 키우면 안 돼?”      


친정 엄마에게 고마운 맘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해영 씨는 걱정이 되었다.


“엄마, 미희는 엄마랑 할머니한테 어리광만 피면서 자라서, 초등학교부터는 내가 잡아야 돼. 엄마가 매일 예쁘다고만 하고 공부도 안 시켜서 큰일이야. 나도 어느 정도 몸 회복 했으니, 입학하고부터는 내가 본격적으로 키워 볼게. 지희 반에 반만큼은 해야 하지 않겠어?” 






 

해영 씨는 똑똑한 큰 딸 지희처럼 미희를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미희의 상태가 심각하다. 

친정에서 할머니, 왕 할머니, 삼촌들의 사랑만 받고 컸지, 또래 아이들보다 한창 모자라다. 



한글도 모르고 책도 싫어한다. 해영 씨의 화장품을 인형에 바르고 노는 것, 그게 유일하게 미희가 좋아하는 놀이이다. 

미희가 초등학교 입학 전 집에 온 날부터 해영 씨는 미희를 끼고 앉아서 매일 공부를 가르쳤다. 

모르면 알 때까지, 혼도 내고 회초리를 들었다. 

 ‘아, 애가 꽉 막혔네. 어쩜 이렇게 멍청하지?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애지만, 지희랑은 너무 틀린데.’ 

미희에게 다그치고 매를 들수록 미희는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해영씨가 뭘 물어보면 '어,어... 엄마....'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무섭다고 소리 없이 흐느끼거나 아예 해영씨의 눈도 못 맞추는 미희가 해영씨는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렇게 애가 답답해서야 언제 다른 아이들을 따라 가? 지금도 한창 뒤쳐져있는데. 큰일이네.' 




해영 씨의 눈을 피해 거짓말을 하는 미희, 미희는 고등학교 때 결국 자살 시도를 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아이. 아무리 자기 딸이지만 대체 알 수 없는 미희의 속마음, 해영 씨는 미희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해영 씨는 미희와 지냈던 시간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착하고 순한 얼굴에 말썽 하나 피우지 않을 것 같던 미희는 스물다섯에 집을 나갔다. 미희가 집을 나간 날, 해영 씨는 두 번 다시는 미희를 딸로 여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괘씸한 년, 내가 지 하나 공부시키고 사람 만든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들어갈 것을 들어가게 해 줬더니, 나 몰래 자퇴를 해? 집 나가서 고생해 보라 해. 그래야 엄마 고마운 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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