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된 혁수와의 동거, 나쁘지 않았다. 스물다섯, 정식으로 집을 나와 만났던 세 명의 남자들은 하나 같이 쓰레기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 만난 애들의 아빠, 그놈이 최악이었다. 나머지 두 명의 남자들도 도박을 하거나 술주정이 심한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혁수는 달랐다. 돈 없고 빽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냥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그 사람이 함께 살자고 했다. 미희의 마음이 콩닥 거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다른 문제가 있었다. 혁수의 큰 아들인 열여덟 민호는 미희가 온 날부터 싫은 내색을 대놓고 했다.
“아빠, 대박이네. 능력도 좋아요. 이혼한 쉰 살에 남자가 일곱 살이나 어린 여자를. 뭐, 혼자 살 것처럼 엄마한테서 우리 데려와 놓고, 저런 술집 여자를 불러요? 뜻밖인데요.”
“야, 이 새끼.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제 너희 엄마나 마찬가진데.”
“뭐요.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술집 여자한테 술집 여자라고 하는 게 뭐 잘못이에요? 그리고 저 여자가 어떻게 엄마예요? 진짜 날 낳아준 엄마가 버젓이 있는데. 아줌마도 잘 생각해요. 우리 아빠 돈 한 푼 없다고.”
미희는 자기 때문에 다 큰 아들과 말싸움을 하고 있는 혁수가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정말 혁수의 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 그만해. 애들도 컸는데. 민호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민호야, 너 편하게 해. 아줌마는 다 괜찮아.”
“씨팔. 우리 아빠 앞이니, 존나 착한 척하네. 그래 봤자, 술집 여자 주제에.”
처음부터 삐걱거렸던 혁수의 큰 아들은 매번 미희에게 시비를 걸었다. 얼마 전에는 혁수가 없는 틈을 타서 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미희에게 걸렸다.
“민호야, 아줌마가 눈 감고 모른 척하려 했는데, 이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빠가 너희들 위해서 힘들게 일하잖니, 이러는 건 정말 안 좋아.”
열여덟 고등학생 민호 방 안에는 책 대신,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남의 아들이라고 해도 도를 넘어섰다. 이런 아들을 위해서 매일 공사판에서 일하는 혁수가 불쌍했다.
“당신이 우리 아빠 옆에 있으니, 뭐라도 된 것 같아? 뭔데 참견이야. 당신, 애들 세 명 버리고 왔다면서? 걔들이나 신경 써. 나 신경 쓸 바엔. 걔들은 당신 같은 엄마 만나서 불행한 거야. 죤나 거지 같지 않아? 엄마란 여자는 지들 버리고 다른 남자랑 시시닥거리고 있으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말을 해?”
혁수 큰 아들 민호는 다 알고 있었다. 미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민호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 다만, 내 가슴속에 있는 나의 아이들에 대해선 그 누구도 말할 자격이 없다. 미희는 참을 수 없었다. ‘찰싹’ 민호의 뺨을 힘껏 때렸다.
그러자 미희보다 한 뼘 이상 큰, 민호는 미희를 벽으로 밀었다. 미희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난리 치는 민호의 다른 쪽 뺨을 또 때렸다. 두 대, 세 대, 네 대. 민호의 뺨이 벌겋게 부을 때까지 미희는 계속 때렸다. 말리는 민호의 연년 생 남동생도 때렸다. 그날, 민호는 얼굴에 얼음찜질을 하면서 친엄마에게 그 사실을 모두 말했다. 민호의 친엄마, 혁수의 전 부인은 미희를 아동학대로 고소하였다.